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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an 09. 2021

Ep.6 태어나서 첫 입원

2020년 12월 10일

45년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 병원에 입원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내 또래 또는 주변 비슷한 나이 때에 입원을 경험해봤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도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내 몸에 대한 건강만큼은 늘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암이란 존재에 의해 내가 입원을 해서 각종 검사를 받게 되는 것에 대해 황당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고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하염없는 슬플 등이 복합적으로 밀려 들어왔다.


병원에서 입원실이 확보되면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집에서 연락 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어제부터 너무 많이 울었더니 몸에 기력이 빠진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다가 피곤함이 느껴져서 와이프와 함께 잠을 청했다. 둘이 같이 누워 있다가 어느 순간 서로 같이 흐느끼고 결국 다시 서로 두 손을 붙잡고 아무 말도 못 하고 하염없이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거의 두 시간을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라도 입원실이 확보되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초조함도 느껴졌다. 이왕 조직검사받을 거 하루라도 빨리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초조함이 더할 즈음, 오후 2시가 넘어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본격적으로 병원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이미 필요한 물품은 와이프가 전날 다 챙겨 놓았다. 차근차근 준비를 마치고 잠시 방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데 큰 애가 오더니 "아빠, 잘 다녀와"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큰 애에게 아빠가 안아줄게 하고 큰 애를 안는 순간 하염없이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직전 주말에도 큰 애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호되게 꾸지람을 해서 큰 애가 서럽게 울기도 했었다. 매번 큰 애한테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화만 자주 냈던 나쁜 아빠였다는 사실에 늘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이 자리했고 그런 생각 할 때마다 평소에 짠한 감정이 느껴졌는데 한꺼번에 묵혀둔 큰 애에 대한 미안함과 서러움이 북받치듯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이쁜 애들이 한창 커야 할 시기에 못난 아빠가 자기 몸 하나 간수 못해서 이런 시련을 안겨다 줘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괴로웠고 서러웠다. 어머니께서 울지 말라고 같이 우시면서 다독이셨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큰 애도 같이 서럽게 울었고 나는 그 모습에 더욱 애잔함이 밀려오면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에도 큰 애는 혼자 화장실 문을 다고 울고 있었다. 다시 한번 큰 애를 껴안고 서럽게 울었다. 아빠가 평소에 사랑하는데 그런 말도 제대로 못 해서 미안하다고 울부짖으면서 얘기했다. 큰 애는 흐느끼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아버지께서 지하주차장까지 직접 내려오셔서 나하고 와이프한테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아버지하고 악수하는데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올여름과 가을 내내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힘들게 고생해서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이제 그동안 기다려왔던 주재원 생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내 몸속의 소용돌이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형언할 수 없는 근심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이런 현실이 다시 한번 원망스러웠다. 당연히 내가 내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일어난 일이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봐왔고 업무 상의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경우도 허다한데 난 그저 다른 직장인들처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으로 잠시 담배와 술에 의지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상습적으로 중독성으로 의지한 것도 아니었고 틈틈이 회사 근처 헬스장에 가서 남들은 잘하지 않는 점심 운동도 챙겼는데 왜 나한테 이런 처참한 현실이 벌어지는 것인지 원망스러움이 느껴졌다.


단 하나, 원망스러움보다는 미안함이 사무쳐서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동안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면서 지내느라 챙기지도 못했던 나의 가족들에 대한 마음의 채무였다.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 수속을 밟고 출입에 필요한 팔찌를 차고 입원복으로 갈아입었다. 입원 복만 입으면 추울 것 같았는데 병원 안은 생각보다 따뜻하였다. 저녁에 짐을 풀고 대기를 하다가 뇌 MRI 촬영을 진행했다. 건강검진받을 때도 뇌 MRI를 찍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답답함이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뇌 MRI를 찍는 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오면서 잠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30분의 촬영 시간이 1시간은 족히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꾸 머리를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이 불편했는데 그럴 때마다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되뇌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밤에 상무님과 이전에 다른 팀에 있을 때 계셨던 팀장님께서 함께 병원에 찾아오셨다. 코로나로 인해 병실 면회는 금지되어 있어서 병동 1층에서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무님께서 애써 영국에 못 가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셨고, 치료받는 동안에도 이전보다 업무강도가 높지 않은 일을 줄 테니 재택근무하면서 챙길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치료받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들게 될 것 같아 내심 걱정했는데 상무님께서 먼저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고민 상담할 일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자신한테 다 털어놓으라고 하시면서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항상 일할 때도 늘 편한 형처럼 대해주셔서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발생해도 많은 위안을 얻게 해 주셨는데 다시 한번 형언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도 상무님께서 큰 힘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내 생애 첫 입원의 첫 날밤, 잠을 청하려는데 쉽사리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입원할 때 읽으려고 챙긴 책을 읽으면서 잠을 청했는데 1시간이 훌쩍 흐른 후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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