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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an 09. 2021

Ep.9 알려야 할 의무

함께 나눌 줄 아는 용기

조직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날, 와이프가 자기는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알려줬다고 얘기하면서 본인 성격상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주변 친한 친구, 동료들에게 알려야 개운해진다고 했다. 속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던 터에 와이프 말을 들으니 굳이 숨길 이유도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영국 발령을 앞두고 연말에 가기 전에 함께 보자라고 소식을 전했던 상황이었는데 갑작스레 급격히 변한 상황을 알리려고 하니 망설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안 볼 친구들도 아닌데 나 역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알리기로 결심했다.


이미 회사에서도 모두가 알고 있지는 않지만 나랑 가까웠던 분들과 주변 팀장님들은 소식을 듣고 알던 상황이었다.


메신저로 동네 친구들, 재수 시절 친구들, 중고등학교 친구들 단톡 방에 차례차례 소식을 남겼다. "다들 잘 지내지? 원래는 영국 가기 전에 보기로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이기도 여의치가 않네."라는 멘트로 인사를 전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당연히 영국 가기 전에 약속을 주선하려는 인사로 생각하고 유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최근에 건강검진했는데 이상이 발견돼서 조만간 항암치료를 받게 될 것 같아."라는 말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멘트들을 계속 적어서 보냈다. 폐암 4기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애써 폐암 3기라고 얘기하고 (무의식적으로 가뜩이나 놀라게 하는 말들을 남기는데 4기라고 하면 나보다도 더 친구들이 놀랄 것이고 그 와중에 생각 히지 못한 두려움이 또 생길까 봐 소심하게 3기라고 얘기했다..) 조만간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적었다.


다들 예상치도 못한 소식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면서 한 마디씩 위로와 격려를 보내기 시작한다. "요즘은 좋은 약들이 많이 나와서 치료도 잘 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마음 단디 먹고 가족들을 생각해서 꿋꿋하게 버텨", "내 주변에도 종종 발생하는 거 봤는데 잘 치료받고 회복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 등의 격려성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 소식을 전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한편으로는 함께 걱정하고 응원해줄 지원군이 더 많이 생기고 있다는 든든함도 느껴졌다.


모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지는 않았다. 내가 홀가분하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고 진심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만 소식을 전했다. 원래 성격상 좋은 일이 있어도 쉽게 남들에게 선뜻 얘기하지 않는 편이었다. 늘 마음속으로 '호사다마'를 의식했기 때문이었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을 통해 경거망동하면 좋은 일에도 재 뿌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경솔하지 말자라는 잠재의식이 생겨나서이다.


그런데 이번 영국 발령은 차라리 처음부터 과감하게 여기저기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도 프로젝트 챙기는 것과 더불어 영국 가는 것도 의식해서 준비하는 시간과 마음가짐의 공간을 어떻게 해서든 확보했을 것이다. 영국 가는 것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 여기고 있던 터라 마음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짐했듯이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해 아쉬움만 곱씹는 것은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더 이상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영국에 초등학교 동창 친구도 다른 회사 주재원으로 나가 있던 터라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도 와서는 여러 가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주었었다. 때마침 친구가 언제 영국에 오는지 물어보면서 연락이 왔다. 그 친구에게도 최근에 벌어진 일들을 담담하게 알려주었다. 몰랐었는데 친구 와이프도 이전에 암에 걸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기 들으니 친구도 상당히 마음고생 많이 했을 거란 생각이 절절히 들었다. 영국의 경우에는 물리적인 치료와 더불어 환자를 위해 심리치료사를 전담으로 붙여준다고 한다. 그 부분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암에 걸렸다는 것에 대해 물론 육체적으로도 큰 영향이 있지만 일련의 과정들을 겪어보니 무엇보다도 암이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로 인한 불안한 감정, 그리고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에 대해 치밀어 오르는 분노 등 마음을 힘들게 하는 감정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결국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환자들의 기운이 점점 쇠약해지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된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암 치료 의술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수준 높은 위치에 올라선 만큼 이제는 환자의 물리적인 면과 더불어 심리적인 면도 아우를 수 있는 치료기법이 활성화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부터 큰 애 어린이집을 통해 알게 되고 급속도로 친해진 학부모 커플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나누면서 극복하자고 격려하면서 주변에 그런 힘든 일이 생기는 것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얘기한다. 나누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쉽게 터놓지 못하면서 지내게 된다. 심지어는 가족에게조차도 쉽게 내 생각을 터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솔직해지려 한다. 내 마음속에 웅덩이를 파는 대신에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시원하게 풀어서 함께 더 많이 나눌 것이다. 나 혼자 이 세상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나눔을 통해 치유와 극복의 시간들을 적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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