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형이라는 브랜드가 Rises and Falls
1980년대 후반 '청, 블루 스케치'라는 청춘영화로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이규형 감독은 당시 얄개로 대표되던 고착된 문법의 청춘영화의 틀을 벗어난 시도로 젊은 세대의 호평을 얻는다. 1987년 여름 서울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그 해 개봉한 한국영화들 중 가장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면서 이규형 감독이라는 이름을 믿을 만한 브랜드로 격상시킨다.
이듬 해 여름 이규형 감독은 또 다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청춘영화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을 함께 전면에 내세운 이른바 '아동 청춘영화' 장르를 선보였다. 제목부터 아동영화 장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영화였다.
당시 아역배우로 큰 인기를 모으던 '순돌이' 이건주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이건주 못지 않게 높은 지명도를 구가하던 또 다른 아역배우 이재은 (이 배우는 99년 '노랑머리', '세기말' 등을 통해 극단적인 이미지 변신으로 아역배우의 이미지를 일거에 지우는데 너무 과감한 변신이 도리어 화를 미치고 말았다.)이 함께 아역 투 톱 주연으로 나섰다.
성인배우 출연진도 당시 잘 나가는 하이틴 스타들로 채워졌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서 보물섬 역으로 일약 깜짝 스타로 떠오른 김세준과 어린 나이에 이미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던 김혜수가 함께 주연을 맡았고, 당시 잘 나가던 개그맨 커플인 최양락-팽현숙 커플이 이른바 '씬 스틸러'로 지원사격에 나섰다.
당시 영화관에서 돌리던 포스터 카드 (이 당시에 가장 흔한 마케팅 수단 중의 하나였다.)를 보면 한국영화로선 흔치 않게 이규형 감독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만큼 이규형 감독은 당시 촉망받는 신세대 감독군의 기수였다.
필자는 이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오직 하나이다. 중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종로 3가 영화관에서 부모님 동행 없이 본 영화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영화이다. 태흥영화사에서 배급하고 태흥영화사 작품의 전속 상영관이던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이규형 감독의 이름값에 힘입어 서울에서만 23만명을 동원하는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영화 자체는 민망할 정도로 유치하고 유머 코드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아이들의 시선과 하이틴 영화의 눈높이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영화는 이도저도 아닌 무색, 무미, 무취의 영화로 전락하였다. 보물섬 역을 통해 일약 단독 주연급으로 올라선 김세준도 아직 단독 주연으로 거듭나기엔 버거운 모습을 보였고 모처럼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맡았던 김혜수도 너무 눈높이를 내려놨는지 목소리 톤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하이톤으로 일관하여 피로를 안겨줬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태국 선수 오캄포와의 권투시합 장면은 당시 권투영화의 고전 '록키'의 눈높이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에게 너무도 조악한 수준의 영상을 제공하여 정작 감동을 받아야 할 장면에서 실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규형표 영화는 무조건 믿고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극장문에 들어섰지만 극장문을 나오면서 앞으로 이규형표 영화를 보기 전에 고민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굳이 찾아서 볼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으로 급선회하게 만든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이규형 감독의 본격적인 몰락의 신호탄을 안겨다 준 영화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