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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an 13. 2021

1988년의 되새김(3) 소련을 아십니까

소련이라는 이름이 마지막으로 불려진 올림픽 - 1988 서울 올림픽

회사에서 일하다가 러시아 법인 관련 업무가 생기면 농담 삼아 '소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대목에서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은 학창 시절 귀가 닳도록 들은 단어에 대한 반가움(?)으로, '소련'이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았던 세대의 직원들은 레트로를 맛보는 듣한 느낌으로 웃음을 머금거나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접했던 '소련'의 존재는 냉전시대 공포의 상징이기도 했다. 특히나 대한민국 현대사에 뼈아픈 비극 중의 하나인 1983년 KAL 민항기 격추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회한과 상처를 남겼다. 냉전시대가 낳은 비극이었다.


1984년 미국에서 제작한 소련의 핵공격으로 인해 미국이 폐허가 되는 장면을 다룬 '그 날 이후'라는 드라마는 당시에 큰 충격을 안겨줌과 동시에 소련에 대한 공포감도 함께 증폭시키기도 했다. 냉전시대 상대방에 대한 공포를 자극함과 동시에 서방진영의 대표 국가 미국은 자신들의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문화적으로 '람보'나 '코만도'와 같은 슈퍼 히어로를 탄생시켜 전 세계에 미국 국력의 월등함과 자신감을 표출했다.


당시 '람보'나 '코만도'의 인기는 마블 슈퍼 히어로들 못지않은 열풍을 몰고 왔다. '람보'의 주인공 실베스터 스탤론의 또 다른 대표작 '록키 4'에서는 대놓고 소련인 복서와의 대결을 다뤄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통쾌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당시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링 위에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 등장하여 소련 복서 드라고 (돌프 룬드그렌)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한 설정이었다.


1980년대 들어 첫 두 번의 올림픽은 공교롭게도 소련(1980년, 모스크바)과 미국(1984년, LA)에서 나눠 치러졌다. 하지만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반발한 미국을 위시한 서방진영이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이에 1984년 LA 올림픽을 앞두고선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보복으로 불참을 선언했다. 반쪽짜리 대회가 연속으로 치러진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소련의 참가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소련이 참가하게 되면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도 자연스레 참가를 하게 되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통합된 대회가 열리게 되는 것이었다. 


1988년 1월 12일 소련이 마침내 서울 올림픽 참가를 선언했고, 서울 올림픽은 당시로선 사상 최대인 160개국이 참가하는 화합의 올림픽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아쉬운 부분은 북한과 쿠바의 불참이었다. 올림픽에서 복싱 최강국이었던 쿠바가 불참한 덕분에 대한민국은 복싱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사상 처음 종합 4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신문에는 소련의 참가에 따른 대대적인 분석기사들이 나왔다. 특히나 올림픽에서 당시 양대 산맥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맞대결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다. (실제 올림픽을 치른 결과, 종합 1위는 소련이 차지했고 미국은 동독에도 밀려 3위에 그쳤다.)


소련의 참가 선언은 당시 주식시장에도 큰 호재로 작용하였다.



현재 주식시장의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1988년 1월 12일 당시 주식은 30,790원이었다. 당시 삼성전자 주식을 100주를 사들이고 액면분할되기 전인 2018년까지 주식을 가지고 있었을 경우 벌어들이는 수익은 다음과 같다. (액면분할되기 전의 주식 가격은 260만 원으로 산정했다.)


1988년       30,790(원) X 100주 =     3,079,000(원)

2018년  2,600,000(원) X 100주 = 260,000,000(원)


그저 호기심에 계산해 봤을 뿐이다. 1988년 주식 중에 눈길이 가는 종목은 맥슨전자 주식이다. 삼성전자 주식보다도 더 높은 47,0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당시 모든 집에 장만하고 싶은 아이템 중의 하나인 무선전화기 전문 제조업체였다. 맥슨 무선전화기는 당시 최고의 CF모델로 각광받던 심혜진이 찍은 CF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CF에 삽입된 Basia의 'Astrud'의 감미로운 음색은 지금 들어도 당시의 심혜진의 상큼 발랄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1988년 1월 연말연시 시즌을 맞아 특선 대작들이 극장가에 내걸렸다. '로보캅', '탑건', '더티 댄싱', '리썰 웨폰' 등 지금도 회자되는 화제의 영화들이 극장가를 수놓았다.



영화배우 김지미가 직접 설립한 지미필름에서 수입, 배급한 '로보캅'은 흥행의 보증수표인 대한극장에서 개봉하여 무려 45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서울 관객 기준) 네덜란드 출신 폴 버호벤의 잔혹한 액션과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위트 넘치는 블랙코미디와 풍자가 결합된 '로보캅'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로보캅'에 삽입된 웅장한 사운드의 테마음악은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당히 자주 애용되었다. 톰 크루즈의 풋풋한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탑건'은 당시로 최고가인 75만 불에 수입되어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패션과 세련된 항공 액션 장면은 현재 개봉 대기 중인 '탑건 2'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탑건'의 제작자는 그 유명한 돈 심슨과 제리 브룩 하이 머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중반까지 제리 브룩하이머는 할리우드의 '미더스의 손'으로 군림하였다. (돈 심슨은 1996년 영화 '더 록' 제작 도중 사망) 제리 브룩하이머는 '탑건 2'의 제작에도 참여하여 옛 영화를 재현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소련의 올림픽 참가는 서울 올림픽 흥행에 큰 공헌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에서 소련이라는 명칭은 사라지게 되었다. 1988년 올림픽 이후 냉전시대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동구권 국가들은 그 오랜 시간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던 소련의 벽도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했고 1990년에는 1980년대에는 상상도 못 했던 대한민국과 러시아 간의 수교가 체결된다.


이제 '소련'이라는 이름은 추억의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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