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제4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1984년 3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장지영(인하대)이 천하장사에 등극한 이후 3개월 뒤에 펼쳐진 제4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과연 4대 천하장사의 자리는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1984년 6월 5일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진 제4회 천하장사 대회에는 무려 240명의 선수가 출전하였다.
3회 대회 16강전에서 김광식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만기는 1984년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맨손체조, 기계체조, 달리기 등을 통해 잡기술을 보강하는데 주력했다. 아마도 김광식의 변칙기술에 3회 대회에서 패배한 것에 대비한 듯한 훈련이라 생각이 된다.
4회 대회에서 이만기는 예선에서 '천적' 김광식을 만나 고전 끝에 8강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김광식과의 16강전에서 양 선수는 동시에 넘어졌는데 이만기의 머리가 먼저 닿은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심판진은 이만기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만기는 2회 연속 천하장사 예선 탈락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3회 대회 2위를 차지한 유기성(현대중공업)과의 8강전에서 다시 한번 석연치 않은 판정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첫 판을 먼저 내준 이만기는 두 번째 판을 만회했으나 사실은 유기성의 다리보다 이만기의 머리가 먼저 닿은 것이었다는 현장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억울한 패배를 당한 유기성은 선수대기실에서 통곡하며 "만기만을 위한 씨름이냐. 나도 남자다. 스스로 졌다고 생각하면 깨끗이 물러날 줄 안다." 고 울부짖었다고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되었다.
당시 씨름에 대한 전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게 한 주역 이만기의 스타성을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씨름협회의 욕심이 심판 판정시비를 일으킨 듯싶다. 8강에서 기사회생한 이만기는 4강전에서 김종렬(현대중공업)을 제압하고 결승에서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와 맞붙게 된다.
이준희는 4강전에서 3회 대회 천하장사 장지영과 맞붙었는데, 장지영 특유의 샅바싸움 신경전으로 인해 경기가 무려 20분이나 지연되고 결국 경기 중간에 주심이 교체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1-1로 맞붙은 상황에서 두 선수는 몸이 뒤엉키며 접전을 벌인다. 그런데 두 선수가 모래판 밖을 벗어나는 순간 이준희는 장지영을 밀어 치기로 넘기고 장지영이 모래판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대형사고가 벌어진다. 100kg 이상의 거구가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으니 그 충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 장지영은 간신히 부축을 받아서 경기장을 나가고 결국 3,4위전 마저 기권하게 된다.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이만기와 이준희가 정면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사실상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두 선수의 결승전은 역대 천하장사 결승전 중 최고의 명승부로 꼽힐 만한 접전이었다. 이만기는 이준희의 긴 다리를 이용한 바깥다리 공격 등에 특유의 유연성을 이용하여 뒤집기, 되치기 등으로 대응하여 2-2 승부의 균형을 맞춘다. 마지막 판에서 이만기는 호미걸이로 선제공격을 시도 이준희를 무너뜨리면서 3개월 만에 천하장사 패권을 되찾게 된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은 '왕의 귀환'에 열광하고 이만기는 우렁찬 포효로 다시 '이만기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4번의 천하장사 대회가 펼쳐지는 동안 무려 3번이나 천하장사를 석권한 이만기는 비록 석연찮은 판정 논란도 있었지만 들배지기뿐만 아니라 되치기, 뒤집기 등 화려한 기술 쇼를 선보이며 씨름의 재미를 한층 드높였다. 비록 이준희는 아쉽게 천하장사 석권에 실패했지만 사상 처음으로 천하장사 결승전에 오르면서 강호의 위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제4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최종 품위
천하장사 이만기, 1품 이준희, 2품 김종렬, 3품 장지영, 4품 김시옥, 5품 이봉걸, 6품 유기성, 7품 최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