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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Feb 01. 2021

추억의 씨름 (5) - 모래판의 신사, 가마에 오르다.

1984년 제5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1984년 9월 14일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진 제5회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과연 4회 대회 천하장사 이만기가 다시 한번 가마에 올라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가마의 주인이 탄생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졌다. 이만기가 다시 천하장사에 오를 경우에 1984년 세 차례의 천하장사 대회에서 2번이나 천하장사에 오르게 되면서 확실한 독주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임을 의미했고, 새로운 천하장사가 탄생할 경우 1984년 천하장사는 장지영, 이만기, 그리고 새로운 천하장사가 각각 삼분하게 되는 것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이만기는 체중이 많고 덩치가 큰 백두급 선수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체중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백두급으로 체급 변경을 계획하게 된다. 백두급 최저 체중인 98kg까지 몸무게를 불리고 나온 이만기는 대신에 특유의 스피드와 변칙 기술들이 이전에 비해 줄어들 것이 우려된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우려는 5회 천하장사 대회 준결승에서 현실화되었다. 


이만기가 4강에서 맞붙은 상대는 '기술의 달인' 손상주였다. 뒤집기, 각종 다리 변칙기술 등 예측불허의 기습을 걸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상주의 스피드에 이만기는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1-1로 균형을 맞춘 세 번째판. 이만기는 들배지기로 선제공격을 시도한다. 그러나 손상주는 낚시걸이라는 특유의 변칙기술로 이만기의 하체 중심을 무너뜨리면서 사상 처음으로 천하장사 대회 결승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하게 된다.


변칙기술에 능한 선수들에게 유난히 고전을 면치 못한 이만기의 약점이 다시 한번 발목을 잡고 말았다. 한편 4회 대회에서 이만기와 접전 끝에 정상 일보직전에서 물러났던 이준희는 8강에서 인하대의 고경철을 그리고 4강에서 같은 팀 동료 최상일을 만나는 대진운도 따르면서 다소 손쉽게 2회 대회 연속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당연히 이만기와 맞붙을 것으로 예상했던 이준희는 예상을 깨고 손상주가 결승 파트너로 결정되면서 생애 첫 천하장사 등극의 결정적 기회를 잡게 된다.


비슷한 체구의 이만기에게는 먹혀들었던 손상주의 현란한 기술은 덩치가 크고 이미 민속씨름 이전부터 숱하게 맞붙어서 손상주의 기술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이준희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3-0으로 승부는 싱겁게 끝났고, 무뚝뚝한 표정의 이준희는 마침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준결승에서 손상주에게 무너진 이만기와 결승에서 마침내 정상에 등극한 이준희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1984년 9월 14일 동아일보)


1983년 1,2회 대회 연속 이만기가 석권했던 천하장사는 1984년 장지영, 이만기, 이준희 이렇게 세 명의 장사가 나눠 차지하면서 팬들의 흥미를 한층 높이게 된다. 만약에 이만기 장사가 1983년처럼 연달아 천하장사를 독식했다면 씨름의 인기는 다소 시들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묘하게 대권 분할이 이루어졌고 씨름의 인기는 더욱 치솟게 된다. 여러모로 논란도 많았지만 씨름의 대중적인 인기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던 198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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