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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치한 작가 May 26. 2024

혼돈의 삶. 너무 힘들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변치 않아야 할 생각 중 하나는 '감사한 마음'이다.

모두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이 사는 삶. 


나는 수시로 사람들을 보며 관찰한다. 길을 걷다가 회사에 있다가 등등. 사람이 있는 곳마다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생활할까 등등. 나 역시 그들의 시선에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삶을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힘들다고 느껴질 것이다. 학생은 학생대로 공부를 해야 되고 그런데 그 공부는 경쟁이 있는 공부이다. 그래서 힘들 것이다. 나도 학창 시절에 많이 힘들었다. 순위가 있고 그 순위에 따른 보상이 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은 대학교에 갈 가능성이 높고 아니라면 그 외의 대학에 갈 것이다. 좋은 대학, 특히 서울대 입학을 한다면 남들보다 분명 빠른 시간 내 유리한 위치에 오를 가능성은 훨씬 높다. 이런 경쟁 속에서 학생들은 힘들 것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있는 부모님들은 애 키우기 정말 힘들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자, 손녀를 봐야 할 수도 있고 만약 충분히 돈이 없는 경우에는 그것으로 애간장타기도하고 여러모로 힘든 환경에 놓여 있을 것이다. 또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혼돈 속에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많이 힘드실 것이다. 


원래 사는 게 이렇게 힘들고 불행한 것인가. 이것에 대한 의문을 가져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원래 삶은 불행하고 힘든 것이고 왜 그런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별로 없는 것이다. 왜 사냐에 대한 답은 그냥 사는 것이다. 정답은 당연히 없는 것이다. 

이 불행과 힘든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고 그 의문을 가지면 가질수록 불행해질 가능성이 많다. 그냥 받아들이면서 살면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사는 것이다. 다만 나는 그냥 사는 삶에서 그치고 싶지 않아 무언가를 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작년부터 뭔가 깨달은 것이 있긴 하다.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것이 이 지친 삶에 동력을 주곤 한다. 이럴 때마다 무언가 즐겁다. 알려주고 싶고 뭔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처럼 조금씩 정리해 보고 기록을 하고 있다. 



삶이 지치고 힘들다면 지금 이 순간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22년 나의 삶은 불행했다. 직장에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모함했고 갑자기 해고가 되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직장 내부의 문제점, 그중에서 가장 심했던 부분 중인 하나인 '하극상'에 대해 정식적으로 의뢰하여 상부에 보고를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내'가 더 잘못이 크다는 상부의 판단으로 내가 해고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말도 안 되게 힘들었다. 


해고된 후 그때 당시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해고가 되자마자 곧바로 인력시장에서 일을 구하고 곧바로 쉬지 않고 일을 했고 밤에는 동시에 법률적인 절차와 준비를 병행했다. 

나에게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기에 무작정 실망을 하고 절망하여 술에 절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냥 나가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여기저기 오퍼를 넣었고 다행히 나는 건강하니 몸 쓰는 일에 대해서는 고용자 역시 큰 이견없이 나를 받아들였고 다음날부터 그 직장 내 형, 누님들과 같이 일을 했다. 운이 좋았다. 같이 일하는 분들 역시 나를 의지했었다. 특히 내가 그분들보다는 젊고 힘을 잘 쓰니 무거운 것은 내가 다 들었다. 또한 휴식시간 종료 2분 전에 나가 미리 준비를 했고 어두운 표정 역시 짓지 않았다. 그분들이 내가 밝고 일을 잘한다며 오히려 파이팅 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여전히 법률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으나 그 당시 '집행정지'라는 것을 얻어내어 5개월 만에 그 직장에 다시 복귀했다. 그 5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이제 1년이 지났다.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그 사건이 일어난 지 2년도 되지 않았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울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없다. 우선 내가 성장을 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고 내가 일보, 이보 전진을 하면서 뒤처리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절망을 해봤자 나의 손해이고 내가 절망하여 주저앉는 모습을 가장 바라는 사람은 바로 나와 법률적으로 상반된 길을 걷는 사람들일 것이다. 

'누구 좋으라고?' 나는 절망하지 않고 절망할 시간도 별로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직 복수심만이 가득 차 있었을 뿐이다. 

하루이틀 지나다 보니 그 뾰족했던 모서리 같던 복수심은 조금씩 닮아서 둥글해지는 느낌이었고 이렇게라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장에서 억울하게 해고되었지만 내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고 물리적인 고통 없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해고되었지만 매끼 밥을 먹을 수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장난스럽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집에서 뒹굴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것만으로 내가 반드시 이 세상에 굳건히 존재를 해야만 하겠다는 이유가 될 뿐이다. 


나는 지금 아프지 않고 내가 만약 배가 고프다면 밥을 먹을 수 있고 대한민국에서 숨 쉬는 것이 불편하지도 않고 카페인이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적을 수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전 세계 상위 5% 내 살고 있는 것이다. 굉장히 유명한 동기부여강사이자 작가 등 여러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게리 베이너척에 따르면 전 세계의 수십억은 사람은 물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상황이고 배가 고파도 음식을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또한 이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수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단순히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할 뿐인데 나는 이 지구상 상위 5% 내의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고로 나는 불행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정신 역시 살아있다. 그 의미는 여전히 복수의 기회는 남아있다는 것이다. 큰 의미의 복수는 내가 잘돼서 잘 살면 되는 것이다. 작은 의미의 복수는 내가 이렇게 받은 불이익에 대해서는 눈감고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반드시 이것은 오랜 기간이 소요가 된다고 하더라도 짚고는 넘어가야 될 것이다. 왜냐면 내가 눈감고 입을 닫아버리면 나 같은 피해자가 반드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을 필히 해낼 것이다. 

이렇게 버텨낼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내 삶의 동력. 

지금 살아 숨 쉬고 있고 행복이 여기저기에 있다. 글을 끝마치고 밖을 나가면 기분 좋은 햇살이 밖을 밝게 비추고 있다. 

하나라도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를 한다면 불행과 고통, 힘듬이라는 단어는 서서히 옅어지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어떤 무언가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에필로그


뭣도 모르고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그리고 이렇게 글을 발행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만약 틀리다면 다시 알아보고 만들면 된다. 다만 나는 그저 좋은 내용에 대해 알려주고 싶을 뿐이고 행동을 하고 있다. 

다음 편은 내가 최근에 너무나도 충격적이게 겪었던 이야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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