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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Jun 23. 2017

한밤중에 깨어나다.

폭풍우가 머문 시간

새벽 세시쯤 잠이 깼다.

막 잠자리에 드려고 침실에 온 남편의 움직임과 뱃속에 아가가 격렬하게 움직이던 찰나였고 창밖에는 무섭게 비가 내리고 있던 중이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기위해 휴대폰을 열어보지 않았다. 멀뚱히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는 남편에게 시간을 물어 내가 잠에서 깨어난 시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다시 잠들고 싶은 그 순간

빗소리는 거세지고 천둥, 번개도 지나쳐 간다. 영국고전 영화에서 나올 법한 모습이 상상되는 소리였는데, 어두운 밤 한 여인이 거센 폭풍우를 가르며 황량한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이며 더위 때문에 열어둔 침실 창문을 닫을까 말까 하는 고민이 더 현실적이었다. 내가 지금 몸을 움직이면 내게 남겨진 잠의 여운마저 달아날까 싶어

모른채하며 누워있는데 더 거세게 비가 내리고 뱃속에 아가는 엄마의 소화기관 소음만큼 굉장한 소리에 놀라 요동을 치고 있다. 남편은 이제서야 막 잠에 들었고 천둥소리에 잠이 깨버린 나를 달래주려 붙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풀려 버렸다.


이미 내 잠은 거의 다 달아나 버렸지만 휴대폰은 열어보지 않았다. 그 빛을 보는 순간 나는 오늘 피곤한 하루를 보낼게 틀림없을테니까.

눈을 감고 여러가지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한 주제에 멈춰섰다.

오늘 수영을 하다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데, 죽기 전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혹은 안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욕망이 강하지 않아 어떤것에 대한 집착이라던가 혹은 욕구나 성취욕이 크지 않은 편이라 '도전'이라던가 '새로운 경험'같은걸 좋하하지 않는다. (그런 무미한 삶이지만 해외생활을 꽤 오래 하고 있다는 것이 나 자신도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의 상황도 나름 편하고 힘들지 않기에 무엇을 더 채워넣고 싶은 생각은 크게 없었지만 아이가 생기고 난 후에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과 하고싶어지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아직은 내 마음속에 불을 지펴 작은 불씨밖에 되지 않지만 곧 강한 의지로 꺼지지 않은 불이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보는바다.


아, 결국 이렇게 잡생각을 하다 지난밤 나에게 주어진 할당량 잠을 채우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새벽 4시에 부지런히 지저귀는 새새끼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남편은 이제 제법 큰 소리로 코를 곯며 잠을 자고 뱃속 아가는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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