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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Jan 30. 2019

사랑해보자.

사랑하는 나의 아이와


한파에 싸돌아 다니다 감기를 얻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듯 아프고 두통과 치통에 뼈마디가 쑤시는 기분마저 든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아파서 종일 누워 있었던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엄마는 아프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걸 본능으로 알고 있었는지 지난 1년 동안, 나는 하루를 끙끙 앓으며 아팠던 적이 없었다.

내가 몸이 찢어지게 아파도 아이가 아프지 않은 것에 감사해 하는 걸 보니 내가 엄마이긴 한가보다.

아프다 보니 욕구가 사라지고 무념무상의 자아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사실, 감기도 세일 막바지 쇼핑을 하다 얻은 것이라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랄까. 

이게 다 무슨소용이라고.

내 자식 예쁜 옷, 좋은 것 가져다 꾸며주면 그게 내 만족만 될 뿐. 아이에게 덜 짜증내고 조금 더 놀아주는 게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인데. 

늦은 후회다. 아니 늦은 후회도 소용없이 잠시 반성할 뿐. 

짧은 반성과 후회 후 나는 또 아이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쉬운 방법을 선택하겠지.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실제 나의 모습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민낯이 아이와 종종 대면하고는 한다.



가끔은 내가 기록하는 엄마의 삶을 타인이 읽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진다. 혹여나 나를 통해 아이를 낳는 일과 자식을 키우는 일에 부정적은 편견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기록은 세월의 바람으로 씻겨진 자국처럼 남겨지는 것이라 좋은것도 나쁜 것고 과거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니무엇이든 그대로 옮겨두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런 것도 또한 나의 과거이고 진실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기록들이 부정적인 것은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대부분이 마음이 불편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한 날들이라 육아를 하며 좋은 날이 기록된 적이 별로없기 때문이다.

의미 있거나 기억해야하는 좋은 날 (예를 들면 아이가 어흥- 하는 소리를 따라했다거나 이상한 모습으로 나를 웃겼던 날 처럼)은 짧은 문장으로 기록이 끝이 나지만  자기 반성이 필요한 날은 구구절절 변명도 반성도 다짐도 써야하니 글이 술술 길어진다. 


(c) 전이수 아빠의 슬픔
(c) 전이수 꿈에서 본 엄마


간만에 잔 낮잠에 자정이 지나도록 정신도 눈도 멀쩡해서 글로 수다를 떠는 중이다.

우연히 알게 된 동화작가 전이수 군의 작품들을 보며 지난밤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나의 아이를 열심히 사랑해주고 있을까? 

아이의 마음에 엄마의 마음이 전달되도록 아이를 뜨겁게 사랑해주고 있을까.

못하게 하는 것들로 아이의 세상을 울타리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과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의 마음에도 부모의 감정들을 읽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나니 나의 아이에게 더 미안해졌다.



쉬이쉬이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와


새 숨결처럼 작은 아이의 숨소리가 들린다.




내가 엄마가 되어 얻게 된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지난 나의 삶을 반성하게되는 것. 그럼으로 삶이 귀하고 사람도 귀하다는 것.

누군가의 자식이라 생각해보면 그 부모에게 소중하지 않은 자식은 없을테니 말이다. 

당신의 삶을 반쯤 함께 하다 전부를 건네주고 떠날 부모의 마음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완벽하다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 아닌 것도 알고 있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완벽하지 못 한 삶을 주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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