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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Oct 15. 2019

운수 좋은 날의 하루

내적 안정을 위하여

1.

아이가 조금 자랐다고 내 손 타는 일이 제법 줄었다.

혼자만의 세상이 생겨 소꿉놀이, 역할 놀이도 하고

커튼 뒤나 식탁 밑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주로 내가 커피를 마실 때 아이는 놀이를 찾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데

그때 나도 내 안의 밸런스를 위해 오로지 커피 한 잔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아웃포커싱 한 사진처럼 지저분한 식탁 위의 물건들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오로지 내 앞의 잔 하나만 보는 것 이 작은 일이 하루의 나를 잘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2.

결혼기념일


기념일을 대체로 챙기지 않다가 작년부터 남편에게 “우리도 기념일을 챙겨보자”라고 선언(?)을 했다.

선물이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지루한 것도 있지만 과거의 그 날을 조금 성의 있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들이지 않았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결혼식날 이라든가, 이십 년쯤은 달갑지 않던 내 생일날이라든가.

모두 별거 아니었던 날들이었다가 아이가 태어난 후, 이 생각들이 바뀌었다. 오늘 우리의 이 순간은 하나뿐이고 그중 가장 아름답거나 행복했던 날이 있다면 특별한 날로 기념해서 그날의 기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집 근처에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정말) 오랜만에 저녁 외식을 했다. 물론 다른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보다 빠르게 식사를 하고 나오긴 했지만 쁘레고를 외치며 나이 든 웨이터가 가져다준 슈타인 필츠와 오일로 향을 낸 파스타와 하얀 콩과 토마토 그리고 갖은 야채가 담긴 말도 안 되는 조합인 -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었던- 난생처음 먹어본 먹물 파스타 그리고 싸구려 하우스 와인 한 잔 조차도 모두 근사한 밤이었다.  

아이와 함께 깜깜한 밤을 걸어오는 길

나는 살아있어 행복한 순간을 맞이 할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미쳐 다 살아보지 못했던 그 젊은 날, 가끔씩 생각했던 그 생각들이 얼마나 슬프고 연약한 것인지.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3.

 거짓말 같은 하루(동안 일어난 일)

                               

첫 줄을 읽으며 마음이 철렁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글

조국 장관이 사퇴를 했다는 헤드라인

설리가 자살했다는 헤드라인을 바라보며

나는 기사 하나를 클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이 오후 내 멈추질 않았고 날씨도 너무 좋아 무엇하나 아쉬운 게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이의 낮잠도 힘들지 않게 재웠고

기다리는 택배만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은 것 말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하루가 가는 것 같았다.

남편의 긴 출장의 배웅도 가벼이 보냈고

밥 싫다던 아이가 한 그릇 뚝딱 점심을 먹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정리를 하고 이른 오후 마신 두 번째 커피도 맛있었다.

나에게는 완벽한 하루였는데 어느 세상은 시끄러웠고 비통했고 슬펐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글을 쓰고 싶어 졌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지지했고 지켜주고 싶었지만 - 그에게도 견딜 수 없는 무게가 있었을 테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세상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무관심이었던 한 부류의 내가,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는 모습을 보니 방관과 무관심이 얼마나 큰 잘못인 지 알게 됐다.




보름달은 왜 이렇게 예쁘게 떠올랐니


마음이 축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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