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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May 14. 2019

주절주절

엄마 아니고 나로 쓰는 글

1.
요즘 아주 무기력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밤에는 자꾸 와인을 한 잔, 두 잔 마시게 된다.

엄마라서, 내일도 피곤할테니 일찍 자야 하는건 맞는데 이 시간 말고는 나도 나만의 시간이 없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라 이 시간들을 쪼개고 쪼개서 사용하는데 이마저도 내가 잘 하는 것인가?하고 생각되는 시간들.

엄마가 되고 나서는 끊임없이 “ 내가 잘 하고 있는걸까?” 하는 질문을 수없이 한다.

“잘” 은 몰라도 “제대로”라도 하고 있으면 좋을텐데. 뒤돌아 서서 반성만 하는 내가 된다.



어여쁘다. 너는 어여쁘다. 하고 나 스스로를토닥여줘야 견딜 수 있는 육아인데 요즘, 나는 자꾸 저 바닥 밑으로만 가려고 한다. 혼자였을 그 때 처럼. 자꾸 내 마음이 무거워져 바닥 밑으로 내려간다.

아이가 있어 꾸역꾸역 밥을 먹고 또 때로는 웃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하루는 즐겁지 않다.

아이와 함께 있으니 이토록 무거운 시간이 참으로 벅차게 느껴진다.



십여년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는 중이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 겨우 책장 한 장을 넘겨 두고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어 읽는다.

기억이라는 건 왠지 이상한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 초원 속에 있었을 때, 나는 그런 풍경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특별히 인상적인 풍경이라 할 것도 없었고, 십팔 년이 지나고도 그 풍경을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으리라 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그때 나로선 풍경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생각했고, 그때 내 곁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아름다운 한 여자를 생각했고, 나와 그녀를 생각했고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을 생각했다. 그때는 무엇을 보든, 무엇을 느끼든, 무엇을 생각하든, 결국 모든 것이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의 손으로 되돌아오는 나이였던 것이다.

주인공은 18년 전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였던 공간에 홀로 다시 오며 느낀 감정들을 서술했지만 나는 그저 나의 지난 시간들이 아련하게 떠올렸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처럼 나는 정말로 파리에서 살았고 그곳에서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모른다.

깊은 밤 빠리의 거리, 사계절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도시의 골목들 그리고 나의 젊은 날들.

나와 함께 하던 그 시간들. 어떤 좋은 날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루키의 글처럼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바람결 마주하던 하늘 색 같은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대수롭지 않던 그날의 공기, 온기 따위가 고흐의 그림을 처음 마주 하던 날 보다 더 먼저 떠오르다니. 참 신기할 노릇이지.

내가 보내 온 시간들.

문뜩 그립고 슬퍼지는 시간들.

그리고 깨달은 건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오늘을 열심히 살자

아주 진부하지만 그게 정답이었다.

2.


누군가 나의 글을 읽으며, 특히나 나의 지인들이 이 글을 읽으며 나와 함께 한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과거의 그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 그 때 그 순간을 느꼈으면 좋겠다. 우린 나이를 먹어가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그러니 우리 함께 지난 시간을 짧은 미소와 함께 추억 하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겠는가.

그때 우리,

그래도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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