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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Oct 20. 2019

고기 먹는 비건

내가 이런 아이를 낳았다.

나는 25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다.

생후 6개월 무렵부터 목과 팔, 다리가 접히는 부분에 피부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오랫동안 다녔지만 여전히 호전된 것 없이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담당 소아과 의사의 소견에 따르면 아토피의 종류이긴 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으니 기본적인 보습 크림만 처방해주었다. 나는 나의 아이의 문제 덕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아토피는 한 가지 증상이 아닌 광범위한 피부 트러블의 일종임을 알게 되었다.

12개월 미만 알레르기 검사 당시 아이는 계란에 양성 반응이 나왔고 많은 아이들은 어릴 때 계란 알레르기가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까지 난 참 쿨한 사람이었다.


24개월 전 해야 하는 신체 발달 검사 U7을 하던 날,  우린 아이의 피부 문제에 대해 다시 얘기했고 혈액 검사를 통해 다시 알레르기 여부 검사를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달걀 알레르기는 여전하고

거기에 유제품에 대한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아주 미비하긴 하지만 양성반응이 나왔으니 일주일간 유제품을 끊어 보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한다. 수치가 낮은 데다가 혈액 검사는 피부반응 검사에 비해 민감도 (알레르기 실제 원인인지 여부 결과가 잘 나오느냐 아니냐의 수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유제품군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실히 판명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뭐? 달걀에 이어 유제품까지 못 먹는다고?

우유를 못 먹는 건 괜찮아.

- 어차피 우리 아이는 아기였을 때부터 두유를 시작했고 주로 두유를 먹고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다 보니 우유가 첨가된 제품이 천지다...

버터, 치즈는? 아이스크림은?

버터로 만든 빵, 과자, 하다못해 피자도 못 먹고 파스타도 못 먹는 삶 니들은 상상해봤니?

그럼 우리 애는 뭘 먹니? 쌀밥에 김이나 싸줘야 하는 거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의 독일어는 짧았고

유당 분해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 한 부모로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입장이라 허공에 웃음만 채운 채 우린 그렇게 유제품 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그 시간 생각보다 힘겨웠다.

전화를 받던 순간 아이의 손에 쥐어진 아침 빵부터 뺏어야 했으니 말이다.


십여 일쯤 후, 우리는 깨달았다.

그동안 나의 아기가 밤잠을 설치며 간지러워했던 그 이유

벅벅 긁어대느라 성한 피부가 없던 아이의 고통의 이유를 알아냈다.

무려 50유로의 개인 진료비를 지불하고 상담했던 피부과의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조한 피부 때문일 것이라고 얘기했기에 우린 아이의 먹는 것에는 큰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 역시 음식에는 큰 영향이 있지 않을 것이란 말에 어미가 의미를 크게 부여한 것도 맞고. 그냥 괜찮아질 것이란 나의 근본 없는 믿음도 더해졌다.

유제품 금식을 하고 난 후 아이의 피부 상태는 좋아졌고 가끔 외식을 하게 되면 어김없이 밤에 간지러움을 호소하며 잠을 잘 못 자곤 한다.

조금 더 정확한 피부 반응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 예약을 잡아야 하는데 이 예약 잡는데만 삼 개월이 걸리고 있다.

올해 유치원에 갔다면 정말 더 복잡한 상황이었겠구나 싶어 마음도 정신도 복잡해졌다.


그래서 시작된 우리 아이의 비건 라이프

(하지만 고기는 먹는다. 아니 먹여야만 한다.)


아이의 끼니는 보통 아침은 빵, 점심과 저녁은 식사 종류로 만들어 주는데 한 끼는 면(국수든 파스타든)이고 다른 한 끼는 쌀을 먹이고 있다.

쌀밥은 반찬을 신경 써야 해서 귀찮기도 하고 아이가 밥을 잘 먹는 편이 아니라 주로 파스타를 만들어 주는데 대부분의 면은 비건이 아니라 이 부분도 꽤 골치 아픈 일이 되었다. 다행히도 독일에서 비건 제품을 구하는 일이 쉬운 덕에 별 문제는 없지만 왜지? 장보기 비용은 세배가 더 드는 건??



아이의 젤라틴 프리 젤리를 사러 유기농 마트에 갔다가 재밌는 푸슬리를 발견했다..(안 사려고 했는데 아이가 꼭 사야 한다며 들고 다녀서 사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신기한 구성물이었다.-이게 바로 얻어걸린 셈이지)

쌀로 만든 파스타인데 식감이 꽤나 재밌다. 가격은 3유로 후반대

쌀 입자가 씹히고 떡처럼 아주 약간 쫀득한 느낌도 든다.

쌀로 만든 유기농 푸실리

아이는 떡도 좋아하고 젤리도 좋아해서 이 푸슬리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리고 함께 사 온 비건 쿠키

오트밀 베이스에 코코넛 오일과 카카오 100프로 초콜릿 카카오 버터로 만든 유제품 프리 쿠키다. 가격은 2유로대

그리고 아들내미가 좋아하는 젤리를 좀 건강하게 먹여보겠다고 시작한 젤라틴 프리 천연과즙으로 만든 젤리가 100그람에 2유로 중반


이런 장보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나씩 가격을 보면 크게 비싸지 않지만 일반 마트에서 사는 제품들에 비하면 용량 대비 가격이 세배쯤은 된다. 그럼에도 사먹는 이유는 완벽한 비건 성분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은 일반 마트에서 구하기 어렵고, 있다 해도 대부분이 기본제품이라 맛이 없다는 것이 큰 이유다.(마치 엄마가 몸에 좋은 거니까 먹으라고 건네주던 그런 음식들과 비슷한 느낌처럼 말이다.)


아이의 알레르기 덕분에 우리 집에 계란과 우유가 사라진 건 오래전 일인데 이제 유제품마저 마음껏 먹지 못 하는 현실에 좌절했지만 나는 이 땅의 가장 강한 사람, 시련 따위를 즐길 새가 없는 어미 이므로 오늘부터 철저한 고기 있는 비건식으로 대접한다.

새로운 요리 세계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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