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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Oct 20. 2019

회동상회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바다 마을에서 “회동 상회"라는 작은 가게를 하셨다.

마을에 유일한 가게(점방)라서 영업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른 새벽이고 늦은 밤에도 가게 문을 두드리면 잠결에도 불을 켜 문을 열어주는 인심 넘치는 가게였다.

나무로  가게의 선반들에는 전병, 젤리 사탕 같은 오랜 취향의 과자들이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찾지도 않을 싸구려 치약과 칫솔들  옆에는 쥐약이며 살림은 물론 농사에 바닷일에 필요한 온갖 것들이 질서 없이 진열되어있었지만 손님들이 "이거 주쇼"하면 할머니는 마술사처럼 그것을 슥슥 꺼내어 건네어 주었다.

어린 나도 금고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곧잘 디스며 장미 같은 담배도 내어주고 

귤은 10개에  원이에요.라고 주인처럼 너스레 떨며 손님을 맞아주곤 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서부터 시작해도 그곳은 아주 낡은 집이라서 나의 기억 속에 남겨진 그곳은 

할아버지의 담배냄새,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뒷방에 있던 어두운  입구가 짙게 기억된다.


 가게에 딸려있는 . 아니 집에 가게를 만든  같은 그곳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높은  하나를 올라 신발을 벗고 

나무로  미닫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활하시던 방이 나온다.

누런 색의 벽지와 계절 분간 없이 걸린 무채색 옷들이 걸린 벽 쪽에는 늘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른 아침, 늦은 오후 햇살이 그득하게 차오르는 시간에도 할아버지가  방에 계시는 날에는 언제나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가운데는 작은 브라운관 티브이가 켜져 있고, 티브이 위로는 아주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창문을 통해 할아버지의 윗집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진짜  마당이 보였다.

티브이 왼편에는 첫째딸 우리 엄마가 시집가며 해 준 할머니의 자게 장이 하나 놓여있고 

 장안에는 할머니가 깨끗하게 세탁  하얀 옷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티브이  오른쪽에는 벽을 뚫어  입구를 만든  유난히도 작은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을 들어가려면 어린 나도 머리를 깊게 숙여야만 지날  있었다. 그곳에는 가게에서 가장 값나가는 담배가 상자채 쌓여있고 할머니의 오래된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쌓여있는 장이 하나 있었다.

워낙 물건들이 쌓여있는 데다 빛까지 들어오지 않으니 어릴  그곳을 들어갈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웠다.

하지만  방을 피할  없는 이유는  안에 화장실이 없어 그곳에 놓인 오강 때문이었다.

밤이면 바깥 화장실이 무서워 오강에 쉬를 해야 했는데 어린 마음에는 여기나 저기나 무섭기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

현대식 욕실을  낡은   곳에 만들었는데 아마 그맘때쯤 동네에 유행처럼 돌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평생  번을 사용하지 않으셨을 욕조와 샤워기가 근사하게 걸린 욕실이 할아버지 댁에 생겼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천장은 낮고 바다 마을 특유의 짠내가 가득한 욕실이었지만 할머니 집에 가도 따뜻한 물로 씻을  있다는 것에  식구들이 감격을 했었다. 그중 가장 어렸던 나는  욕실이 마냥 달갑지 않았던  그곳을 가려면 작고 어두운 방을 지나쳐야만 했고 그것보다  무서웠던   욕실 문을 열면 바깥인지 안인지 구별이  가는 보일러실로 향하는 입구와 욕실 입구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욕실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열어야만 하는  문을 열면 오른쪽에는 욕실  왼쪽은 한낮에도 깜깜했던 휑하고 싸늘했던 공간 성인이 되어서도 그쪽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번도 없었다.

 욕실로 향할 때는 눈을 질끈 감고 기억에 발을 맞춰 재빨리 욕실 문을 찾아 들어가곤 했다.  


어째서 17년도    기억들이 오늘 같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일까.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안 계신 지금, 할머니 댁 그곳은 아직도 남아 있을까?


 스무  엄마 곁을 떠나  이후 나는 할아버지  욕실을 가볼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나는 이제 그곳에  일은 영영 없어져 버렸다.

추석이면 엄마의 오형제가 모여 바다에서 가져온 것들과 명절을 맞아 마을에서 함께 잡은 소나 돼지고기를 나눠 

명절 내내 고기 요리를 잔뜩 먹었다.

아침을 잔뜩 먹고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나 가게 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집어 바닷가로 뒷산으로 마실을 다녀오면 

할머니는  잔뜩 음식을 만들어다 우리에게 나눠 주셨다.

소화가  틈도 없이 먹고 놀다 도시의 집으로 떠나는 날에는 검정 비닐봉지에 가게에 있는 과자들을 잔뜩 챙겨 

차에 넣어주시며 “얼른  오너라  새끼들이라고 말하시던 할머니.

자식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낡은 집이  쓰러져 버릴  휑하게 느껴졌을 쓸쓸함이 채워졌을 텐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수많은 이별을 반복하셨었다.



떠나간 사람은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 할 쓸쓸함과 그리움을 알 수 없다.

이별을 하던 시간이 낮이든 밤이든,

나의 자식이 어리든 크든 한사코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남겨진 사람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품을 쉬이 떠났고 

엄마의 품을 마음 알알하게 떠나왔다.

떠나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엄마가  나는 할머니가, 엄마가 슬프게 삼켜야 했을 그 마음을 고작 저 3년을 키운 나의 아이를 통해 느끼게 됐다.



때때로 이 작은 아이와의 먼 훗날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이 찌릿해질 때가 있다.

 내가 살아가야  , 네가 살고 있는  그것의 크기가 같지 않으니 우리는 언제든 이별을   있겠지.

그때도 부모는 남겨진 사람이 되는 것일 테지.


보름달이 가득 하늘을 메운 밤.

아주 작은 나였던 내가 할머니 집 옥상에 올라가 바다 위에 떠 있던 보름달을 보던 날이 생각났다.

맨질 하게 닦인 할머니의 장독대에 달빛이 비치면 한낮처럼 밝았던 그 밤

짠내가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어도 우리에겐 그곳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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