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야.

by 멜오

이십 대 초반, 나는 마티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인생 처음 실물을 접한 인상파 후기의 작품들에 푹 빠져있었고 그 그림들에 비해 피카소와 마티스는 성의가 없었고 스토리 또한 서정적이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느꼈던 현대미술에 대한 마음들처럼 마티스의 그림도 그랬었다.
파리의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고 꼬박 십 년이 흐른 뒤,

갓 백일이 된 아이와 함께 들렀던 베를린의 작은 미술관에서 다시 만난 마티스의 그림은 따뜻했고 사랑스러웠다.
성의 없이 툭툭 그렸을 것 같은 점과 선 그리고 그가 골라 바른 물감들 색에서 그가 바라본 사람들, 물체들은 생기 넘쳤고 아름다웠다.


때론, 아무것도 아닌 채 나이를 먹어 가는 나 자신이 아쉬워질 때가 있다.

전문 커리어도 직함도 없는 누구의 아내와 누구의 엄마이기만 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럼에도 세월과 삶 덕에 바뀐 취향과 생각들을 마주할 때면 나이를 먹어 다행이구나 싶을 때도 있다.


급한 것이 많이 없어졌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넓어졌다.

어린 시절, 나는 이해와 너그러움 따위는 결핍된 자아로 꽉 채워졌다면

지금은 관대롭고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문제 앞에 한 숨 쉬어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곱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 점잖은 어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베를린 서쪽 샤를로텐 성 맞은편에 있는 이 미술관은 파리의 미술관들에 비해 규모는 몹시 작은 수준이지만

규모와 소유한 작품의 유명도보다 더 놀라운 건 바로 이게 Heinz Berggruen이라는 한 사람의 컬렉션이라는 것이다.

피카소와 클레(Paul Klee), 마티스 그리고 자코메티 (Albreto Giacometti)의 조각까지.

처음 이곳을 왔을 때, 작은 미술관에 이것들이 어떻게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은 비록 유명 작품이 많지 않지만 그림과 조각이 자리 잡힌 공간에서 주는 아름다움과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조명 그리고 한 콜렉터의 삶이 느껴지는 작품들의 리듬이 너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나에게 베를린은 애정이 크지 않아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파리만큼 추억이 담긴 곳이 별로 없다.
수 백번은 걸었을 세느강 주변 거리와 젊은 날 고민의 숨만 들이키며 앉아 있던 에펠탑 근처 공원들.
여름날 폐장 2시간 전 오르세 미술관으로 달려가 제일 꼭대기 층, 관람객이 아무도 없는 방 하나에 앉아 보내던 시간.

여름날 다리 위, 강변 어디든 앉아 마셔도 맛있던 싸구려 샤르도네 와인.
파리에서는 해봐야 할 것들을 수백 개라도 말해 줄 수 있지만

베를린은 글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 하나.


비가 오는 날, 이 미술관에 가 보라는 것이다.


두 개의 건물이 연결된 이 미술관의 포인트인 연결 통로가 비가 내리는 날 그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삶의 취향과 방향은 나이를 먹음과 함께 쓸려 흘러간다.
과거의 것과 오늘이 달라졌다고 해서 내가 변질된 것은 아니라는 걸 서른 중반이 되며 알게 되었다.
변하는 것에 쓸쓸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오늘의 나와 잘 마주 해야 한다는 것도 (이젠) 알게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회동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