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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Oct 30. 2019

변하는 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야.

이십  초반, 나는 마티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인생 처음 실물을 접한 인상파 후기의 작품들에  빠져있었고  그림들에 비해 피카소와 마티스는 성의가 없었고 스토리 또한 서정적이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느꼈던 현대미술에 대한 마음들처럼 마티스의 그림도 그랬었다.
파리의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고 꼬박  년이 흐른 ,

 백일이  아이와 함께 들렀던 베를린의 작은 미술관에서 다시 만난 마티스의 그림은 따뜻했고 사랑스러웠다.
성의 없이 툭툭 그렸을  같은 점과  그리고 그가 골라 바른 물감들 색에서 그가 바라본 사람들, 물체들은 생기 넘쳤고 아름다웠다.


때론, 아무것도 아닌  나이를 먹어 가는  자신이 아쉬워질 때가 있다.

전문 커리어도 직함도 없는 누구의 아내와 누구의 엄마이기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럼에도 세월과  덕에 바뀐 취향과 생각들을 마주할 때면 나이를 먹어 다행이구나 싶을 때도 있다.


급한 것이 많이 없어졌고 이해해   있는 것들이 넓어졌다.

어린 시절, 나는 이해와 너그러움 따위는 결핍된 자아로  채워졌다면 

지금은 관대롭고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문제 앞에   쉬어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곱게 나이를 먹는다는 , 점잖은 어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베를린 서쪽 샤를로텐  맞은편에 있는  미술관은 파리의 미술관들에 비해 규모는 몹시 작은 수준이지만 

규모와 소유한 작품의 유명도보다  놀라운  바로 이게 Heinz Berggruen이라는  사람의 컬렉션이라는 것이다.

피카소와 클레(Paul Klee), 마티스 그리고 자코메티 (Albreto Giacometti) 조각까지.

처음 이곳을 왔을 , 작은 미술관에 이것들이 어떻게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울  없었다.
이곳은 비록 유명 작품이 많지 않지만 그림과 조각이 자리 잡힌 공간에서 주는 아름다움과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조명 그리고  콜렉터의 삶이 느껴지는 작품들의 리듬이 너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나에게 베를린은 애정이 크지 않아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파리만큼 추억이 담긴 곳이 별로 없다.
 백번은 걸었을 세느강 주변 거리와 젊은  고민의 숨만 들이키며 앉아 있던 에펠탑 근처 공원들.
여름날 폐장 2시간  오르세 미술관으로 달려가 제일 꼭대기 , 관람객이 아무도 없는  하나에 앉아 보내던 시간.

여름날 다리 , 강변 어디든 앉아 마셔도 맛있던 싸구려 샤르도네 와인.
파리에서는 해봐야  것들을 수백 개라도 말해   있지만 

베를린은 글쎄. 자신 있게 말할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  


비가 오는 ,  미술관에  보라는 것이다.


 개의 건물이 연결된  미술관의 포인트인 연결 통로가 비가 내리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삶의 취향과 방향은 나이를 먹음과 함께 쓸려 흘러간다.
과거의 것과 오늘이 달라졌다고 해서 내가 변질된 것은 아니라는  서른 중반이 되며 알게 되었다.
변하는 것에 쓸쓸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오늘의 나와  마주 해야 한다는 것도 (이젠)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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