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볶은 김치 그리고 흰쌀밥
하원 후 작은 걸음으로 집 근처 마트에 들러 과일 몇 개를 고르고 저녁으로 뭘 먹을지 상의를 했다.
“이로야 저녁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면
보통은 모르겠다는 답이지만 정말로 먹고 싶은 게 있는 날에는 재료와 요리 방법까지 콕 집어 얘기해준다.
오늘은 쌀밥에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한다.
이로는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꽤 입맛이 정확한 편이라 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만 잘 먹는 편이지 그 외에는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소고기 필레(안심 스테이크)와 유통기한 임박(내가 먹을) 삼겹살 세일이 있길래 저녁 찬거리로 사 왔다.
당연히 이로는 삼겹살을 먹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나는 삼겹살과 볶은 김치와 흰쌀밥을
아이에게는 소고기 스테이크 (물론 미디엄으로 잘 구웠다.)를 차려 주었더니
녀석이 두어 점 먹더니 내 밥에 관심을 갖는다.
김치를 물에 씻어 달라는 둥
자기도 삼겹살 먹어보겠다는 둥…?
고기는 더 있으니 먹고 싶으면 더 구워주겠다고 하니
그것도 아니고 내가 먹는 것을 본인도 먹겠다고 한다.
부드럽게 익힌 삼겹살과 반짝 빛나는 (아마도 윤기가 흐르는게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볶음김치도 함께 꼭 먹고 싶어!
볶은 김치는 물에 씻어 봤자 양념이 씻겨나갈 리 없는데도 응원봉 흔들 듯 물속에서 쉼 없이 김치를 씻어보아도 양념이 씻겨 나갈리 만무하다.
아이는 여전히 빨간 그 김치 작은 한 조각을 야무지게 흰쌀밥에 얹어 먹는다.
맛있는데 매우니 물도 들이켠다.
두번 세번 연속으로 물이 쭉쭉 들어간다.
역시나 매운가 보군.
결국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삼겹살 한 줄을 굽고 김치는 물에 씻어 하얗게 한 후 삼겹살을 굽던 팬에 함께 굽는다.
노릇하게 고기가 익었고 김치는 윤기가 바르르 하니
봄 호숫가 물결처럼 반짝인다.
작게 잘라 아이에게 줬더니
바로 이맛이지.
엄마, 사실 나는 삼겹살에 흰쌀밥이랑 김치가 먹고 싶었던 것 같아.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저기요? 저, 언제부터 흰쌀밥에 볶은 김치가 딱 입맛에 맞으셨던 거죠?
이거 처음 먹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
그렇게 이로는 밥을 두 번이나 더 채워 먹고 저녁식사를 끝냈다.
어떤 날은 밥과 원수 진 것처럼 먹지 않다가도 이런 날은 밥을 나보다 더 먹기도 한다.
이렇게 잘 먹고 며칠이 지나면
양 볼이 마치 백도 복숭아 두 알이 얹어진 것처럼 볼록해진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고 보면 볼이 핼쑥해져 있는데 그만큼 키가 쑥 자라난 모습이 보인다.
여름철 텃밭에 심어 둔 상추나 깻잎들이 하룻밤만 지나도 무럭무럭 자라나듯
곁에 두고 보는데도 아이들은 하루 이틀 새에 쑥 쑥 자라나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우리 이로는 5세가 되었고
기특하게도 한국인의 입맛 유전자를 잘 키워 나가며
삼겹살과 볶은 김치 그리고 흰쌀밥의 음식 마리아쥬 정도는 기본으로 할 줄 아는 기특한 녀석으로 자라고 있다.
자, 그럼 다음 메뉴는 무엇으로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