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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Sep 15. 2022

이로운 생활 - 미덕은 누가 만들었나

나에게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택할 권리


해외에서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친절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잘 웃고 거절을 잘 못하는 특징으로 친절한 아시아인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친절함”이라는 단어에는 긍정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망하거나, 어색하거나, 무안하거나, 미안하거나, 고맙거나 긍정과 부정 혹은 아무것도 아닌 상황 모두에 미소를 띤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제스처가 아닐까?


우리에게는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친절함과 미소가

때론 독이 되어 돌아 올 수도 있다는 것 명심하자!


가끔씩 심보가 배배 꼬인 유럽인들 중에는

왜 자꾸 웃는 거냐고 따지듯 묻는 사람도 있다.

넌 왜 그렇게 늘 웃는 거야? 하며 진지하게 묻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선생님은 쉽게 웃지 말라고 조언도 해준다.


웃는 얼굴에 뱉은 침을 받은 기분이 이것일까?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신념으로

세계 평화와 내 주변의 평화를 몸소 실천 중인

나는 아이에게도 고루고루 친하게 지내라고 하지만

때론 이 말들이 아이에게 싫음을 거부할 권리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양인들의 세계관에서는 상황에 맞춘 유연한 사고보다 일관성 있는 자신의 의견이 더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겨지므로 과연 우리가 생각하고 살던 미덕의 의미가 이곳 세상에서도 미덕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독일 땅에서도 미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한 예로

최근에 생긴 일화이다.

아이 생일 파티 초대를 앞두고 초대할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었다.

아이는 친하게 잘 어울리는 친구들을 먼저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와 남편은 초대장을 받지 못 한 친구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 아이들 모두를 일단 초대해보자고 제안했다.

초대장을 모두에게 주지만 전체가 참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만약 선별을 해서 아이들에게 초대장을 줄 경우 초대장을 받지 못한 친구들의 마음이 속상하지 않을까? 하는 어른들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같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초대장을 주는 것으로 했다.

(물론 아이도 사전에 동의했다.)

그런데 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안에서 만들어진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노는 것이 외로워 보이는 시선

초대장을 받지 못해 슬퍼 보이는 시선처럼

개인이 경험했던 감정을 이입하고 일반화시켜 아이에게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런 감정을 아이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인간이 될까?



누군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추천받아 막상 먹었는데 그다지 별로 였던 경험들이라던가

잔뜩 긴장하고 치과에 갔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던 경험

엄청 무서울 것 같았던 놀이기구를 탔을 때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덜 무서워서 견딜만했던 경험들

모두에게 한두 가지씩 있지 않던가?


우리가 경험했던 경험은 결과가 되었고 그 결과의 값은 경험을 했기에 괜찮거나 그렇지않다는 평가할 수 있는 주어가 될 수 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결과를 섣불리 얘기하는 것은 아직 경험치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과연 득일까 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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