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육아는 아이가 아니라 나를 키우는 일
육아에 관련된 영상 하나를 보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다 글을 쓰게 되었다.
모든 것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시기에는 육아를 안일하게 대한다. 무언가 더 찾아보려고 애쓰지 않을뿐더러
아이의 마음을 더 들여다본다거나, 아이와 나의 소통 방식에 변화를 두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도 남편도 아이에게 잘 못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발등에 불이 붙은 사람마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듯, 내가 잘 못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육아 조언을 찾기 위해 글과 영상을 찾아본다.
방법을 찾고 방식을 바꿔 나가고 이내 또 긴장을 풀고 안일한 육아를 하게되는 반복의 일상이다.
사실 육아는 계속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매우 고강도의 긴장감이 넘치는 생활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지켜보며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시기에는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는 데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통은 많은 부모가 처음 육아를 하는 경우일 테고,
육아서의 조언이 적용이 전혀 안 되는 우리의 아이는 부모가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겨우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부모의 노력만큼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도 매일 자라고 우리의 마음도 매일 변한다.
아이가 말을 잘하면 할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어른스러움을 기대하게 된다.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좀처럼 아이는 귀찮고 힘든 존재가 되어간다.
어른처럼 말도 잘 하고 이해도 다 하는데 상대의 마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때로 괘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순간은 아마 내가 아이를 아이가 아니라 다 큰 사람 (어른)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거창한 단어 같지만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란 얘기였다.
유튜브 영상 시청도, 휴대폰도, 게임도 막을 수 없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끝낼 수 있는 조절 능력을 길러줘야 하는데 사색, 바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추면 조절 능력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영상을 보더라도 그다음 장면이나 이야기를 예상하는 것, 생활 속에서도 어떤 상황이 진행될지 스스로에게 맡겨 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색,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은 아이들에게 강요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육아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아이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간다고 해도 절대 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결국 육아를 하는 부모가 지향해야 하는 바는
영유아 시기에도 아이는 부모가 어떤 상황에서 긴장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는지 인지하고 있다.
당황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아이는 부모를 통해 눈으로 몸으로 습득하게 된다.
부모가 한 박자씩 천천히 나아가야 아이들도 그 박자에 맞춰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달으며 내일은 조금 천천히 말하고 차분히 아이의 말을 들어주겠노라 다짐해본다.
아, 성격 급한 엄마는 오늘도 아이에게 다섯 마디를 듣고 열 마디를 내뱉었다.
깊게 반성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