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오 Aug 08. 2016

도시에서 도시로

여행을 떠나왔다

 이 글은 2011년 9월 14일에 썼습니다.




무엇이든 선뜻 나서서 하는 성격은 못 된다. 

열 번쯤은 고민을 하고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면 그 후로도 스무 번쯤은 또 고민하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 하고 사는 것 같지도 않고 해야 할 말, 싫은 내색은 참 잘도 낸다.

 

 

시작하기 전에는 늘 싫은 감정, 별로 원하지 않은 마음이 대부분이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이 나중에는 더 오래 기억될 일들이 많다.

밤을 새워서 친구들과 해를 보러 바다에 갔던 날, 야밤에 동네 산을 오르던 날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저 높은 곳을 가자고 나섰던 그날도

사실, 어쩌면 삶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는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은 생각해도 별로 내키지 않은 일들과 하기 싫은 일들이 내 손을 스치기도 하고 얹히기도 하니까..

 

 


여행이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주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면 불편하고 두려운 것이 여행이다.  

내 몸에 익숙한 침대를 떠나 여러 사람의 살 냄새가 풍기는 낯선 침대에 몸을 누여야 하고 

한 번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도 없는, 겁나고 두렵더라도 늘 미소 지어야 하는 역할자가 여행자이기도 하지. 

 


시골에서 자랐고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여행의 목적지는 다시 또 시골이다.
도시에서 도시를  움직이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특히나 유럽 땅에서는! 오래된 건축물도 언어만 바뀐 마트의 물건들도 한 층 더 얹어진 빨간 버스도, 

쌀쌀한 체온을 가진 도시 사람들까지 내게는 모두 그냥 도시의 모습이다. 

래서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고 착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얼굴에 배어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간다. 


그곳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창가에 토끼 인형을 가져다 놓는다거나 

생김새가 낯선 이방인들에게 헬로 대신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를 걷는 동안에는 복잡한 마음을 떨쳐낼 수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그래도 작은 마을이 있는 곳에 가면 이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을 수는 있다.
아직은 괜찮다고. 천천히 가라고- 서두를 필요 없는 게 인생이라고- 은빛 머리를 가진 예쁜 사람들의 위로가 있는 곳. 
물론 그들은 나에게 답을 주는 것도, 지긋하고 골치 아픈 내 현실에서 영원히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때 그 시간들은 두고두고 삶의 밑거름이 되는 것만 같다. 

하긴 어떤 순간이든 내 안으로 들어와 쌓이고 있으니 무엇하나 버릴 건 없는 게 바로 시간이지.

주름이 미소가 된 좋은 얼굴을 가진 채 
해가 지는 늦은 오후 시간 몇 번이고 읽고 읽었을 책을 들여다 보고

 집 앞 뜰에는 내가 좋아하는 라벤더가 넘실대도록 심어 놓으며 늙어가고 싶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도시는 내가 떠날 수 없는 둥지이고 

(아직은) 비바람이든 눈바람이든 어떤 시련이 와도 꽁꽁 붙들어 매고 살아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시골로 여행을 다니며 내 퍽퍽한 삶을 위로하면 되는 거고

너무 늦지 않게 그곳으로 돌아가 살면 되는 거고!


바라고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이고!


  

작가의 이전글 여행 : 다하우 유대인 수용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