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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Sep 19. 2023

무제

나는 유희열의 영향을 받아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연주곡을 사랑했고 하루키의 글체를 사랑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의 유희열은 자신이 동경하던 류이치사카모토의 곡을 표절한 작곡가가 되었지만 분명 그에게도 어떤 영감의 찰나가 있었을 테고 어쩌면 너무 사랑했기에 그것을 닮아 버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흐릿해진 것은 아이를 갖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육아에 시달렸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잘 몰랐고 사랑하는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몰랐었지만 아이를 낳고 난 후 나는 내가 무엇을 얼마큼 사랑하는지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오늘은 남편이 아이를 재우는 날이다. 잘 자라고 인사를 하며 "사랑해 잘 자. 내 사랑"이라고 인사를 했다. 무엇인지 모르게 이 인사가 애틋해졌다. (여섯 살 아이의 가을을 찰나를 기억할 때 오늘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 아닐까?)


9월. 지난 한 주. 베를린스럽지 않게 9월까지도 날씨가 좋았다. 내일부터는 기온이 퍽 떨어지고 가을의 문 앞에 서 있는 오늘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오랜만에 류이치사카모토의 노래모음을 들으며, 지나간 시간을 곱씹는다. 오늘 사온 토스카나의 21년 산 베르멘티노 화이트와인은 오늘 날씨와 맞지 않지만 과거의 나의 시간을 추억하기에는 딱 맞춘 듯 좋다.


어떤 이의 글에서 자신의 엄마가 생각하는 자신의  황금기는 49살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서른일곱과 여덟을 가로지르는 중이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스무 살 시절 생각하던 서른의 중반처럼 낯설고 마흔아홉은 너무 먼 시간 같지만 아이를 키우고 정신 차리고 보면 마흔아홉이라는 나이에 순간 이동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슬프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사실, 나는 여전히 둘째에 대해 고민을 하는 중인데, 남편에게는 나는 둘째를 갖지 않겠노라 선언은 했지만 조금은 고민을 하는 중이기도 한다. 아무리 돈 안 들이고 공부시키는 독일이라지만 이곳에서도 사교육(운동)이며, 해년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이며, 이것저것 지출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두 아이를 사랑할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아이 한 명 키우는데도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에 내가 과연 두 인간의 삶을 보살필 여유는 있는 것인가, 그 책임감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와 같은 생각들이 반복되며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하나면 충분하지. 내가 온전히 너에게 사랑을 주마' 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부모와 자식이 교감하는 가족애 말고 형제지간에 느끼는 가족애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 혹은 우리가 사라지고 난 후 '네가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생각해 보면 둘째가 필요한 듯 하지만 그렇다면 둘째를 첫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인 건가? 하는 생각에 물음표만 가득한 채 고민의 끝을 맺지 못한다.

무엇보다 내 나이만 서른 후반은 노산인데, 출산은 어찌어찌해 보겠지만 만 3살까지는 빼도 박도 못하고 매일같이 산책에 놀이터에 아, 정말 상상만 해도 체력이 소진되는 기분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의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나의 아이라는 것.

아직 아기가 없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인생에서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고 순위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무엇인 생겼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인생이 비로소 완벽해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 물론 육아는 늘 힘들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삶이 완벽해지고 충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다. 이토록 완벽한 시간들이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고 그 기억으로 부모는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별 거 아니라는 것이 이렇게 증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걷고 말하고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으로 부모는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을 알았으니 삶의 이유를 다 깨닫게 되는 것 아닐까.

13도 베르멘티노와인을 세 잔 정도 마시며 류이치사카모토의 피아노 연주곡을 듣다 보니 글이 길어진다. 

오늘은 생각이 나는 대로 마법에 걸린 듯 타자가 술술 써내려 가고 있으니 그냥 이렇게 글을 끝맺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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