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나는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어서 대학에 갔다. 글 쓰는 법을 배워 빨리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책 세 권을 쓰는 것이 '새로운 꿈'이자 남은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만) 스무 살, 일년 간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엄마에게 들이밀며 호기롭게 유학을 가겠노라 선언했다.
아빠와 헤어지고 홀로 딸 셋을 키우던 엄마는 고단했던 삶에서 막 한숨을 내쉬며 쉬어갈 수 있겠노라. 준비되지 않은 불안한 앞만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볼 때쯤 일어난 일이다.
나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 사춘기를 내리 이곳에서 보냈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던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싫었다.
그래서 내가 살던 곳에서 내가 생각한 가장 먼 곳의 세상을 상상하며 그곳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 작은 섬에서 먼 곳으로 떠나왔다.
가끔씩 내가 그 땅에 처음 마주했을 때의 풍경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3월 마지막날. 막 서머타임이 시작하는 유럽의 겨울과 봄의 그 경계선의 날. 그날이 내 삶에서 짙은 상처이자 변곡점이었다.
무슨 호기로 나는 한국을 떠나왔을까.
여전히 그 용기이자 무모함을 설명할 수 없다.
그때 내가 떠나온 곳은 도망치고 싶었던 근본이었을까 새로운 것을 찾아보고 싶었던 나의 진정한 이데아였을까.
아무튼 그 후로 20여 년이 흘렀고 나는 내가 꿈꾸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아는 마흔 살이 되었다.
아이는 커서 스스로 샤워도 하고 샤워하고 나와 머리를 말릴 줄 아는 여덟살이 되었다.
나의 아이는 계속 자랄 것이고, 과거만큼 나의 손길도, 애정도 필요하지 않게 되겠지. 그래서 미루던 것을 해보자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던 글과 탐닉하던 예술가들을 따라 하고 싶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나라고 못할게 뭐가 있던가. 그렇게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보길 몇 번이었지만 결국에는 나는 완성 짓지 못한 글이 쌓여갔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일도 해야 하고, 엄마도 아내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내뱉으며 그렇게 한 두 해를 보내고 나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을 해야만 내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했고 어느새 2학년이 되어 과제를 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하던 중 글을 쓰고 있다.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플라톤의 철학을 이쯤이면 그만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문이 너무 많다... 와 같은 원초적인 생각으로 이 지독한 시간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저녁을 먹으며 내게 말을 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있으니까 나는 지루하고 하루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 엄마는 왜 숙제를 하는 거야?"
아이의 투정에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까... 계란 프라이의 반쪽이 다 익어갈 때쯤까지 생각해 보았다.
"숙제는 네가 얼마나 이 시간을 집중하고 있는지 선생님이 알 수 있는 방법이야. 네가 만약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네가 그걸 어려워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리고 네가 앞으로 더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
아이는 신통하게도 단박에 그것을 이해했다. 내가 두 자리 숫자를 빠르게 덧셈할 수 있는 걸 알아서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하는 다른 문제를 자기에게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겠다고 대답한다.
아이에게 설명하며 나도 또 한 번 챗지피티에게 질문하는 대신 수업을 다시 들으며 과제를 작성해 본다.
내 손으로 써 내려간 것들이 내게 닿았던 것임을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