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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17. 2021

07. 부평초의 삶

어딘가에 속해있지만 속해있지 않는

이후의 나의 삶은 부평초 같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평초는 물 위에 떠다니며 사는 풀이다. 뿌리가 있지만 물 위에 기에 물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하염없이 표면을 떠돌아다닌다. 나는 둥둥 떠돌며 살았다. 항상 어딘가에 속해있지만 속해있지 않는 상태로 떠돌아다녔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는 것 같지만 크게 정을 붙이지 않았고, 소속감을 가지면서 소속감을 가지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사람들을 환영했지만 그들이 떠나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살면서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에 따라서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듯 주변에 있는 사람들 역시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래서 인연이 소중하다는 것을 더욱 알았다. 오래도록 인연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수고스러운 일인가. 그럼에도 나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사람들에게 쉽게 속내를 드러내거나 정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관심사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단지 언제든 만나고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느슨한 소속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내가 이러한 사람이 된 것은 당장 내 먹고살 길은 내가 알아서 마련해야만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대학에 입학 하고 첫 학기의 학비를 조달하는 것부터 크나큰 도전이었던 나에게는 정말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쉴틈 없이, 다소 강박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녔다. 나는 외부의 소음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나의 주변을 둘러보기 보다는 나의 삶 자체에 더욱 집중하려 하였다. 지금은 이렇게 떠돌지만 언젠가는 적당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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