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niciel Mar 18. 2021

08. 고속버스터미널

여행자의 공간, 아무도 아닌 자들의 공간

1학년 때는 서울에 못 가봐서 한이 맺힌 사람처럼 매주 주말에 혼자서 서울로 향했다. 어릴 때 내가 서울에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이 당연히 누렸던 것들을 누리지 못했던 것에 너무나 억울했고, 그러지 못했던 나의 시간들에 보상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주 주말에 약속을 만들거나 약속이 없더라도 전시회를 본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를 만들어 서울로 갔다. 대학 동기들이 내가 서울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여행하는 사람이 되어 틈만 나면 부지런히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고속버스터미널은 나에게 있어서 또 다른 집이다. 그 정도로 아주 친숙한 공간이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지리가 훤했다. 실제로 가족이 있는 고향보다도 더 많이 드나들었을 정도로 자주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그곳은 동시에, 이름이 없는 누군가로 그저 지나가는 공간이었다. 곳에서는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을 것 같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실려오고 실려 나갔다. 이름이 없는 누군가로. 이름이 없는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묘한 일이다. 터미널에서 나는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무도 아니었다.


나의 행동반경은 고속버스터미널이 있는 강남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였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란, 버스나 기차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신데렐라와 같은 자들이기에 늘 터미널이나 역 근처에서 머물다가 가기 마련이다.


혹여나 사는 곳이 아주 깡시골이어서 배차 간격이 애매하게 5시 차 아니면 8시 차 이런 식으로 서너 시간 간격으로 늘어져 있기라도 한다면 더욱 바빠진다. 제시간에 차를 타기 위해 오전부터 오후까지 집중적으로 일정을 빠르게 소화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획을 짜야한다.


어쩌다가 차를 한 번 놓치기라도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오가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아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터미널. 그곳에서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다음 차를 속절없이 기다리며 붕 떠버린 시간 속에 허우적거리는 일은 지루하고 외롭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도 서울, 경기, 인천, 그 외 다른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고 있었기에 어쩌다가 만남이 있는 날이면 우리는 모두가 가장 모이기 편한 곳인 강남에서 모이게 되었다. 또 가끔은, 고향 친구들을 서울에서 만나기도 했다. 우리가 찾는 모든 것이 강남에 있었고 모두를 배려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회사에 다니게 된다면 무조건 강남에 있는 곳에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재미있는 신념도 가지고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과 강남은 나의 삶의 새로운 거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7. 부평초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