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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16. 2021

06. 젊음의 유배지

자유의 무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직해 서울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는 나는 줄곧 지방에서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타지에 나와 살면 집이 그립다고 하는데 나는 어릴 적에 살았던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곳은 논산이었다.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머물며 살게 된, 나의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매주 수요일 군대에 복무 중인 청년들이 자유시간을 얻어 별 볼일 없는 시내를 떠돌아다니는, 그러나 과거에는 강을 따라서 배가 들어오는 강경의 항구와 함께 번영했던 도시, 지금은 과거의 영광은 저물고 청년들이 군대에 유배당하는 작은 도시였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를 구속당한 채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어서였을까 나 역시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졸업하는 시간 동안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미칠 듯이 답답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는 더 넓은 곳으로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곳에서는 별달리 무언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릴 적의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하지 않는 곳에 발이 묶여 있다는 사실이 참 싫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인정 받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인정 받을 수 있었을 뿐이다. 원하지 않는 공부를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도 싫었다. 그곳은 나에게도 유배지였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독립적인 주체임을 인정받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랐다.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더라도 아무도 무어라 할 수 없는 때가 하루빨리 오기를, 답답한 도시를 떠나는 날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리고 집과는 먼 다른 지역에 소재한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나는 그 악몽 같은 도시를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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