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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30. 2021

20. 이태원에서 살아볼까

못할 게 뭐 있나

여름 날씨처럼 들끓었던 여러 감정들은 가을에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게 되어 상황이 나아지면서 차츰 잦아들었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고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불가피했다.


새로운 직장, 하지만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당분간 일하며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고 최대한 빠른 기간 안에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내어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이것을 나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그 해 연말에 조용히 시작된 유래 없는 전염병 사태가 벌어지면서 잠깐 머물다가 떠나겠거니 했던 이곳에서 당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올해는 이렇게 보냈으니 새해에 더 잘해보자고 다짐하며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사기충전을 하고 있었는데 찬물을 끼얹듯이 상황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전염병은 정복되고 인간이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별거 아닌 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모두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을 맞이하여 혼란한 와중에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내가 계획하고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려 했던 것들이 망가졌고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고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했다. 


세상 일이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뭔가 다시 해보려고 하는데 왜 하필이면 지금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인지 상황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그러는 중에도 시간은 꾸준히 흘러서 어느덧 사당동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사를 다니는 일은 피곤하다.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짐을 챙기고 옮기고, 다시 내려서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 과정은 즐겁지 않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정착 실패다. 나는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다. 사당동은 강남과 가까워서 편리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제 2호선 지하철 안에서 고작 7개의 역을 지나치는 시간도 못 견뎌했다. 나는 새로운 집을 찾아야만 했다. 그동안 함께 살던 룸메이트 또한 강서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서로가 편한 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에 이태원을 떠올리게 되었다.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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