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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31. 2021

21. 방랑

그저길이 나있는대로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거나 어느 날 그냥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돌아다닌다. 가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떠돌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저 길이 나있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의 모습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괴롭혔던 감정들은 수그러든다. 그때그때의 마음에 따라서 아무런 방향이나 가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더 좋은 길을 알게 되기도 하고, 오늘은 아니지만 다음에 꼭 들러보고 싶은 장소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날도 그런 날 중에 하나였다.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풀기 위해서 나는 하루 동안 어딘가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예 이태원에 살아볼 작정이므로 이참에 조금 멀리 가서 이태원 근처로 가보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작정하고 나와서 집 앞 맞은편에서 용산으로 가는 방향의 버스를 타고 사당동에서부터 출발해 강을 건너 그냥 서빙고의 한 정류장에서 내렸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지도 모양을 봤을 때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서 걸어보면 될 것 같았다.  


역 앞의 도로변에서 아무렇게나 내린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지도를 보면서 차도를 쭉 따라갔다. 그 길에는 장벽이 쳐져 있고 그 안으로 특이한 주택들이 있었는데 군용 주택으로 보였다. 


나는 한강중학교 앞까지 걸어가다가 한 바퀴 돌아내려와서 다시 동빙고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는 아무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앞에 놓인 것은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대단히 낙후된 주택가였다.


이전부터 서울에서 살아왔던 사람이 아니라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부분이 재개발 지역으로 구획되어 있는 곳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어차피 허물고 다시 지을 것이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어찌 되었든지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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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장면을 몇 가지 보았는데 그중 하나였던 이 동네 통장님의 집 앞. 아주 많은 정보가 게시되어 있었다.

 

골목 군데군데에서 서당 관련 광고문과 결혼 중매 광고문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뭔가 과거의 마을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요즘 세상에 서당이라니 신기하기도 했고 동네에서 정말 결혼 중매를 해달라고 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길이 좁고 방향이 어지러워서 헷갈렸지만 계속 올라가다가 막다른 길을 마주하고는 다시 내려와서 다른 길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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