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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29. 2021

19. 불안과 조급함

그것을 달래주었던 커피 한 잔

그 뒤로는 별 수 없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른 점은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해오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공부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쉽지 않았다. 사실은 그냥 적당히 어렵지 않게 살고 싶을 뿐인데. 


내가 미래에 대해서 막연히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때는 대학생 때였다. 여태까지 내가 해오던 것과 다른 새로운 일을 하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해내기 위한 과정이 결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빨리 뭔가 이루어 내고 싶은데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날이 갈수록 나의 불안감은 심해졌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조급한 마음까지 더해졌다.


사실은 아무것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충분히 어렸으니까.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이야기 해주어도 정작 내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 상황을 멀리서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 또다시 맞이하게 된 한 여름 어느 날, 더위 탓이었을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 때문이었을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룬 나는 결국 그대로 밤을 지새웠다. 


스스로를 다독여 보려 했지만 별 쓸모가 없음을 깨닫고는 그대로 일어났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바람이 들어왔다. 고양이가 창가로 와서 새소리를 들었다. 


새벽 6시에 맞춰놓은 모닝콜이 울렸다.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피곤한 얼굴로 밖으로 나와서 집과 5분 거리인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한 정거장 지나서 내린 다음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오스트리아식 커피를 파는 카페였다.


그곳에서는 위스키나 리퀴르를 넣은 유럽식 커피를 팔고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사치스럽게도 술이 들어간 커피를 한 잔 시켜 마시면서 혼자 테이블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읽었다.


커피 한 두어 모금에 카페인과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지며 옅은 상승감을 느꼈다. 그 상승감이 피곤한 몸을 움직였다. 


아 이 얼마나 값싼 행복인가. 내가 술을 잘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다행이다. 아주 경제적이고 내 형편에 딱 알맞았다. 편의점에서 4개에 만원에 파는 맥주라면 4일은 하루에 한 번씩 조금 행복할 수 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적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었다. 이제 니코틴만 더한다면 더욱 금상첨화일까?


신을 믿지는 않으나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가지지 못한 사람 또한 행복은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니 꽤 공정한지도 모르겠다. 은혜롭게도, 이렇게 쉽고 비싸지 않게. 그때 처음으로 이래서 사람들이 술에 빠지고 담배에 빠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아무것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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