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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28. 2021

18. 결심

고대하던 그 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생활을 1년이나 하고 나서야 나는 퇴사를 했다. 어느 회사에 다니던지 퇴사하는 날, 그 순간만큼 기분이 좋고 짜릿한 날이 또 없을 것이다. 매일 제 날짜에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것은 더 이상 바랄 수 없지만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 때문일까.


그다음에 이어진 월급이 없는 삶은 더욱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생활을 끝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지속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스스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더 빨리 결심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고작 1년을 회사에 다녔을 뿐인데 알게 모르게 건강이 많이 나빠져 있었다. 특히 시력이 놀라울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원래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빴지만 자라고 나서는 시력의 변화가 거의 없었던 나였다. 


어릴 때는 눈이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시력 변화가 크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에는 눈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서 시력의 변화가 그렇게 크지 않다. 안경이 너무 오래 되었으니 바꿀까 하고 찾아간 안경점에서 무슨 일인지 오른쪽 눈의 시력이 한 5단계는 낮아진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왜 이렇게 앞이 뿌옇게 보이지?' 했던 순간이 많아졌었다. 그때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바보 같게도 나는 그런 일이 단지 내가 안경 렌즈를 덜 닦아서 그런 것이거나 바깥에 미세먼지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안경사 선생님이 현재 시력대로 한 번에 단계를 높이면 적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해서 적당히 도수가 높은 렌즈로 바꾸었다. 렌즈가 너무 두꺼워져 압축을 3번이나 하고, 그나마 덜 못 나보이게 비추는 모습이 덜 왜곡되는 조금 더 비싼 렌즈로 안경을 새로 맞추었다. 렌즈의 도수가 너무 높으면 눈이 정말 콩알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남은 것은 약간의 돈과, 새로운 가족이 된 고양이 한 마리와, 내 이름으로 이런저런 채널에 나갔던 300개의 글, 아주 나빠진 시력, 그리고 글 쓰는 근육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몇 달 동안은, 내가 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외면한 채로, 다른 길을 찾아서 방황하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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