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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27. 2021

17. 잠깐 숨을 곳은 있었어(2)

어제에 이어서

모스크바로 출장은 자주 가지만 여행은 잘 안 간다고 하던데 나는 당시에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이던 대학 동기를 만나러 혼자 러시아에 갔었다. 러시아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면서 겁도 없었다.


그때 방문했던 카페는 동기가 모스크바에서 아주 유명한 카페라고 데려갔던 곳이었다. 들어가려고 하니 문 앞에서 두 명의 여직원이 '즈드라쓰드부이쪠'하고 인사하며 문을 열어 주어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 그들의 환대와 자본주의스러운 친절함을 처음 겪어 보아서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카페 내부는 꽤 크고 현대적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을 주었는데 종류가 아주 다양했다. 러시아어는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할 줄 모르던 나였지만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동기의 도움으로 디저트와 차를 무사히 주문할 수 있었다.


그곳의 케이크는 어마 무시한 크기와 비주얼을 자랑한다. 과연 이런 것이 러시아스러움인가 싶을 정도로 크고 토핑이란 토핑은 모조리 올려져 있다. 그래서 케이크를 한 조각만 주문했는데도 둘이서 한참을 먹었다. 10월 말, 눈이 내릴 듯 말 듯 추운 날씨에 따듯한 곳에서 따듯한 차와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니 행복했다.


우리는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달라고 해서 몇 번이나 차를 더 마셨다. 그때 마셨던 약간 밀키 했던 우롱차를 정말 맛있게 마셔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기회가 있으면 나는 우롱차를 마신다.


가로수길에서 먹었던 내 사랑 우피케이크

그런데 바로 한국의 가로수길에 그 카페가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이 신사로 옮겨지고 난 뒤로 투덜거리면서 출근하던 어느 날에 나는 그 엄청난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카페의 위치를 찾아보니 감사하게도 사무실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점심시간에 동료직원들에게 엄청난 러시아 디저트를 보여주겠다며 한 명, 두 명씩 데리고 가서 쿠키를 하나씩 집어오고는 했다. 가로수길에 있던 카페는 러시아 모스크바 본점처럼 매장이 크지도, 차 종류가 많지도 않았지만 여행하던 시간들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그 뒤로 참새가 방앗간에 들리듯이 나는 틈만 나면 그곳으로 가서 아주아주 크고 단 초콜릿 쿠키와 마시멜로를 사다 먹으면서 그 괴롭고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냈다.


최근에 그 동네에 갈 일이 있어서 들른 김에 간식이나 하나 사 먹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다시 가보았는데 지금은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영업을 했던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코로나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한 것 같다.


러시아에서 좋은 추억이었고 한국에서도 나의 비밀 탈출구가 되어준 디저트 카페여서 아쉬움이 크다. 언젠가 다시 그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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