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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26. 2021

16. 잠깐 숨을 곳은 있었어

죽도록 가기 싫은 곳에도

공식적으로 서울시민이 되기 전에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너끈히 차를 타고 다녔던 내가, 지하철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다니는 것에 질려 버렸다.


간혹 환승역에서 타이밍을 놓친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도 했지만 서울에 살면서 이만한 출퇴근 시간이면 훌륭한 것이 아닌가 했다. 아, 인간이란 몹시 간사한 동물이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서울인'이 되자마자 어디론가 이동하는 일을 싫어하게 되다니, 그 이유는 원하는 것을 가졌기 때문일까, 이제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까, 지쳐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한 살 더 나이가 든 탓일까.


아무튼 자칭 전국적 유목민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회사에 가기 싫어 우는 얼굴로 신사역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놀러 나오는 곳인데 나는 일을 하러 나와야 해서 더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기 죽도록 싫었어도 당장 가진 대안은 없어서 한동안 그 생활을 지속했다. 지금에 와서는 왜 더 과감하지 못했는가 생각하지만 그때는 매달 한 번씩 나에게 주어지는 푼돈이 소중했다.


아침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환승하는 일은 날마다 대단한 모험이었다. 3호선으로 환승하러 내려가는 통로에 사람이 가득 차다 못해 승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까지 사람들이 빼곡하게 줄을 서 있었다. 그 광경은 날마다 보아도 매번 새로웠다.


그야말로 아주 짧고 임팩트 있는 출근길이었다. 차라리 9호선 출퇴근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9호선은 급행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죽도록 가기 싫던 곳이라도 나에게 해방감을 주는 곳이 한 곳 있었다. 그곳은 내가 유학 중 방학기간을 이용해 러시아 여행을 갔을 때 들렀던 디저트 카페였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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