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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Apr 29. 2021

44. 꾸미다(2)

수저부터 완벽하게

커트러리는 스테인리스 18-10에
티타늄 무광 골드 코팅으로


비록 월세긴 하나 이태원에서 첫 집을 구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을 가꾸고 나 스스로를 대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사 전부터 나는 공간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림을 그려가면서 치열하게 고민했었다. 그래 봤자 원룸일 뿐이었지만 남의 집에 살더라도 이제는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조금 구색을 갖추어 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언젠가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홈카페 겸 바를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라는 전제 조건을 항상 '내 명의의 집을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 꿈을 이루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침 코로나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기가 좀 눈치 보인다는 핑곗거리도 하나 있었다. 방이 하나라서 많은 걸 놓을 수는 없었지만 예쁜 테이블 하나 정도는 놓을 수 있을만한 자리는 있었다. 그렇게 나만의 작은 홈카페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을 목표로 가구와 소품을 사 보기로 했다.  


이사 오면서 룸메이트와 나의 물건을 구분하고, 대부분의 물건을 버리고 오다 보니 그 흔한 수저도 없었다. 그동안 배달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둘씩 쌓아온 플라스틱 수저 같은 것들을 사용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걸 다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여태 제대로 된 식기도 하나 없었다. 분명 대학생 때 1인용으로 부모님이 하나 사주시긴 했던 것 같은데 자꾸 옮기고 합치고 하다 보니 다시 논산집으로 돌아갔는지 나에겐 없었다. 그걸 다시 보내 달라고 하기도 번거롭고 그래서 이왕 살림살이에 구색을 갖추기로 했으니 식기부터 새로 사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거나 제일 싼 물건으로 사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은 돈을 아끼겠다고 다이소에서 제일 무난해 보이는 접시를 대충 사 왔지만 이번에 사는 집에서는 뭔가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을 가져다 놓고 싶었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커트러리를 찾는 것부터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딱 내가 원하는 모양과 느낌을 찾기 위해 하루 이틀 정도를 손품 팔아가며 그렇게 요란하지 않으면서, 무어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찾아 헤매던 재질과 클래식한 선을 가진 물건을 찾아냈다. 


그리고 식사용, 디저트용, 기다란 티스푼, 빵에 버터나 크림을 바를 때 쓰는 스프레더까지 종류별로 하나씩 다 구비하기로 하고 구매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커트러리에만 8만 원 돈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혼자 사는데 무슨 종류별로 포크 나이프를 모으냐, 티타늄 수저가 대체 왜 필요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행복한데 뭐 어떤가. 이전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비합리적인 소비였지만 취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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