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niciel May 12. 2021

55. 바선생 소동

이태원의 바선생은 진.짜.다

방 안을 어떻게 꾸며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무섭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러 친히 방 안에 출몰한 바선생의 습격에 나는 그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평화로운 주말 어느 날, 갑자기 천장의 어디에선가 나타난 까맣고 커다란 바선생. 일생동안 이런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지난 자취방에서 의도치 않게 바선생 감별 전문가가 되어버린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분명 집 안에서 서식하는 독일바선생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비참한 기분이었다.


이 정도의 크기라면 추측컨대 밖에서 사는 것들일 것이다. 차라리 집 안에 서식하는 종류가 아니라서 다행일까? 하지만 집 안에서 사는 것들이 아닌데 이미 집 안에서 자리 잡고 산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 가설이 사실로 판정된다면 그 날로 바로 짐을 싸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저걸 어떻게 없앨까 초긴장 상태로 머리를 바쁘게 굴리는 나와 그런 내가 어리둥절한 나의 고양이. 그러다가 바선생과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기분이 나빴다. 내 눈치를 보는 그를 보았을 때 그도 사실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돌아다니다가 실수로 밖에 나와 버려서 '아, 이런... 여기가 아닌데' 하고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어쨌든 한번 내 눈에 뜨인 이상, 끝까지 쫓아가서 확인 사살을 하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바선생과 몇 시간 동안 대치상태에 있었다. 이걸 없애지 못하면 이 집에서 절대 잠을 잘 수 없다는 생존의 각오로 나는 그와 싸워서 어떻게 이기기는 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한 번씩 가다가 밤에 잘 때 어디선가 부스럭 거리는.. 그런 비슷한 소리가 나서 대체 무슨 소리일까 의문이었는데 그 소리의 원인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 같다. 정말 너무 소름이 끼쳤다.


그때부터 인테리어는 올스탑. 그날부터 나는 매일매일 집에 들어갈 때마다 언제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는 바선생의 존재에 집에 있는 시간 내내 스릴을 느끼면서 살았다. 사당동에서 이사 온 지 두 달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나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편도 아니었고 뭔가 벌레를 유발할만한 것들은 특별히 없었는데 집이 노후되었는데 건물관리를 특별히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웬만하면 놀라도 속으로만 놀라고 소리를 낸다거나, 호들갑을 떠는 일은 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태원에서 맞닥뜨린 바선생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게 만드는 엄청난 크기와 비주얼을 가진 강적이었다. 심지어 날기도 해서 나는 이 비행바들이 나올 때마다 속으로 울었다.


바선생을 처음 본 날에는 Y의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오기도 했다. 다만 이런 비행바들이 출몰할 때마다 우리집 고양이는 전에 보지 못했던 속도와 빈틈없는 행동으로 나를 대신해서 이 끔찍한 비행바들을 대신 때려잡아주었다. 귀엽지만 역시 사냥꾼 본성을 속일 수는 없나 보다. 나의 고양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 난관을 헤쳐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가 사냥에 성공할 때마다 나의 영웅의 발바닥을 닦아주고 맛있는 간식을 주는 것으로 작은 명장을 대우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54. 잠시 무역왕을 꿈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