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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y 17. 2021

56.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대 바선생이 방 안에서 날아다닐지라도

무슨 일 있니?
그게... 바퀴벌레 때문에요...



집 안에서 처음으로 바선생을 목격하고 나서, 드문드문 목격되던 녀석이 어느 시점부터는(추측컨대 초음파 벌레 퇴치기를 설치하고부터) 출몰 간격이 하루나 반나절 단위로 급격하게 짧아졌고 그 까만 것을 볼 때마다 나의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냥감의 등장에 우리 집 고양이는 혼자 신이 났지만.


웬만하면 내 선에서 해결해보려 했지만 이미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기에 결국 임대인에게 연락을 해서 이런 문제가 있다고 알렸다. 다행히 임대인이 좋은 분이셔서 세스코 기사님을 동반하여 건물 상태를 점검하러 와주셨다. 이런 경우에는 건물 전체를 다 방역해야 해서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세입자들에게 모두 연락을 해서 방문 날짜를 잡아주셨다.


약속된 날짜에 나는 휴가를 내고 집에서 대기했다. 세스코 기사님을 반기기라도 하듯이 그 녀석은 기사님 방문 5분 전에 또다시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이미 여러 차례 봤지만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도망을 다니는 그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나는 우리 고양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도움을 청한다.


"여기!!! 여기 있어!!! 제발 잡아줘!!!"


녀석의 엄청난 속도에 신이 난 고양이는 추격전을 벌이다가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냥감을 놓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사냥감이 도망친 방향을 알려주며 부른다. 나의 말을 알아들은 우리 집 고양이 장군은 곧 그 녀석을 발견하고 쫓아가 솜방망이로 내려쳤다. 아무래도 치명타였나 보다. 녀석이 솜방망이 공격을 받아 비실비실하게, 하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던 그 순간 세스코 기사님이 도착하셨고 확인 사살을 하셨다.   


세스코 기사님은 내 방에 등장한 것이 미국 바선생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고 보니 그럴듯한 것이, 우리 집 근처에 앤틱가구거리가 있고 코로나 시국인 와중에도 이따금 커다란 화물 컨테이너가 한 두 개씩 들어오고는 했으니 뭔가 컨테이너 박스가 이 나라 저 나라를 이동하면서 흘러 들어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의 추측을 뒷받침 하듯이, 기사님은 이태원에서 보이는 바선생들이 확실히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것에 비해 크기가 크다고 하셨다. 이런 크기는 이 동네에서 처음 봤다고 하셨는데 정말 끔찍했다. 어쩌면 내가 관리가 잘 되는 신축 건물이나 오피스텔 같은 곳에서 살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일일 수도 있었다. 의도치 않게 이 지역의 벌레 현황까지 생생하게 알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이 녀석들은 퇴치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다. 기사님도 얼마나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나는 이대로 이 집을 포기하고 떠날 것인가 내적으로 심각하게 갈등했지만 그래도 집주인께서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데 조금만 참고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날 이후로 몇 달 동안 바선생 퇴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방역을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집에 있었다. 벌레 때문에 휴가를 쓰는 이런 상황이 너무 웃기고 싫었다. 회사에도 우리집에 끔찍한 것들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났다. 부장님이 집에 벌레를 다 잡았냐고 생각날 때마다 물어보셨다. 하지만 집에 고양이도 있고 아무래도 나 없는 빈집에 사람을 들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고양이가 낯선 사람을 무서워해서 방역이 있는 날이면 나는 우리 고양이에게 오늘은 벌레 잡아주는 아저씨가 오는 날이니까 겁먹지 말라고 미리 대여섯 번씩 반복해서 이야기해주고 낯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시켰다. 다행히 내 방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벽을 마주 보고 있는 세대에 그것들이 주로 진을 치고 있었기에 그쪽을 해결하니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옆집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가고 있던 것일까 의문이다.


근원지를 찾아서 방역을 확실히 해주신 덕분에 처음 한 달 정도는 고생했지만 몇 달이 지나자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이태원에서의 삶을 끝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이 또한 지나가더라. 나는 아직 이태원에서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내가 정상적으로 생활 할 수 있도록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도와주신 세스코 기사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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