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케밥 노스텔지
새벽에 유일하게 문을 열던 곳
이태원역에서부터 녹사평으로 가는 큰 대로변에는 케밥집이 모여 있다. 터키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는 이 케밥집을 볼 때면 프랑스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곳에서도 시내 곳곳에서 케밥집을 하고 있는 터키 사람들이 많았다.
밤 늦게까지 일하는 한국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저녁 7시 전후로 거의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 그 동네에서 밤늦게 새벽까지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곳은 펍이나 케밥집 정도였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져서 더 일찍 문을 닫으니 썰렁한 거리에서 불을 켜고 늦게까지 장사하는 케밥집은 더욱 반짝반짝 빛이 난다. 기다란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서 부지런히 굽고 손님들에게 케밥을 내어준다.
교환학생을 온 다른 유럽인 친구들과 함께 저녁에 모임을 나간 날이면 펍에서 술을 몇 잔 마시다가 허기져서 길거리를 돌아다니고는 했는데 그때 찾던 곳이 케밥집이었다. 아직도 시내 어딘가에 있던 '에뚜알 케밥'이 기억난다. 별케밥이 뭐냐고, 뭔가 촌스럽지만 그래서 뇌리에 콕 박혀버린 그 가게.
가격도 저렴하고 양이 많아서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이 찾기에 좋았다. 밤에도, 낮에도 찾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먹었던 케밥은 크기도 무척 크고 고기도 가득하고 맛있었다. 거기다가 감자튀김도 왕창 만들어서 얹어주니 가장 작은걸 시켜도 너무 양이 많아서 겨우겨우 먹었던 기억이 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이태원 길거리에 늘어서 있는 케밥집들을 바라보자면 그때 그 맛이 가끔 생각난다. 이것도 어느순간 내 DNA에 새겨진 음식이 된 것이겠지.
그 나라에서도 그렇고 이 나라에서도 그렇고 어딜 가나, 낯선 땅에서 자기들 나라의 음식을 만들며 장사하는 것을 보면 나도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지내보았던 시절이 생각나서, 뭔가 이 사람들도 여러 애환이 있겠지 싶어 괜한 감정이입을 하게 되기도 한다.
지금도 가끔 늦은 시간에 이태원 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간판에 불 켜고 부지런히 영업 중인 케밥집을 보며 '아, 이럴 때 술 한 잔하고 케밥집에 가야되는건데'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그 맛을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몇 번 시도해보았다. 한 번은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케밥집에 찾아가서 주문해보았다. 한국에 있으니 당연히 한국인의 입맛에 최적화된 케밥을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뭔가 내가 생각하던 케밥과는 재료도 다르고 맛도 달라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이태원에 있는 케밥집들을 모두 경험해본 것이 아니라서 다음에 다른 곳에도 가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다시 맛볼 수 있겠지, 그때 먹었던 그 케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