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그 이상의 가치는 부족했던 팝업 카페
(2019.10.31. 방문)
경복궁 한복판에 특이한 팝업 카페가 열렸다. 엄숙하고 차분한 궁 한가운데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실 수 있다니 얼마나 특별한지! 봄, 가을에 딱 몇 개월만 운영한다고 해서 올해 마지막 운영일에 냉큼 다녀왔다.
생과방은 경복궁의 부엌, '소주방'에 있었다고 한다. 소주방은 경복궁을 지을 때 함께 만들었다가, 화재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실되었다. 2011년부터 복원공사를 진행해 지금은 소주방 전역의 전각이 복원된 상태다.
소주방은 각 음식의 쓰임에 따라 외소주방, 내소주방, 생과방(생물방)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생과방은 떡이나 다식, 강정 등 후식이나 별식을 준비하던 곳이라 지금으로 따지면 디저트부쯤 될 것이다.
미로 같은 전각 사이를 지나 생과방에 다다랐을 때, 직원의 복식 덕분에 마치 조선시대로 발을 들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주방 사람들이 입었을 법한 한복에 탕건 같은 모자. 건너편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메뉴는 실제로 생과방에서 만들었던 다과와 차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단출한 구성이 아니어서 놀랐고, 가격이 무척 저렴해 한번 더 놀랐다.
엄청나게 특색 있는 것들은 아니었지만 한옥 안에서 먹는다는 점이 후한 점수를 주게 한다. 체험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일까. 다과는 모두 미리 만들어두어 불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맛은 짐작할 수 있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궁 안에서 차를 마신다'는 경험 자체만 본다면 생과방 방문은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이 공간과 역사, 맥락을 잘 살려내지 못했던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어떤 시대, 공간, 문화의 맥락을 이어내는 작업은 단순 복원 그 이상의 가치 또는 의미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궁 부엌에서 먹는 그때 그 메뉴'라는 두루뭉술한 컨셉이 조금 더 뾰족했더라면 더 풍부한 콘텐츠가 됐을 것이다.
우선 어떤 취지로 이런 팝업 카페를 여는 것인지, 전각 복원에 더해 이러한 무형적인 복원이 왜 필요한 것인지, 소주방과 생과방은 무엇을 하던 곳인지를 간단히 설명하는 브로셔가 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들어가지 마시오'가 잔뜩 붙은 궁 안쪽,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경험이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다.
예쁜 사진 찍고, 대충 차 한 잔 마시고 떠나는 소비적인 경험으로만 남거나 카페 투어의 한 코스로 지나쳐버리기보다, 유/무형적 복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로 전환시켜주었다면 팝업 카페의 취지를 더 잘 살려주지 않았을까.
언뜻 생각해봐도, 소주방은 몇 세기에 걸쳐 운영되었을 테다. 그 긴 시간 중에서 특정한 어떤 시대를 컨셉으로 할지가 분명했다면 메뉴, 복식, 소반, 쟁반, 그림, 심지어는 음악 같은 디테일들도 더 세심하게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크게 조선 전기, 중기, 후기로만 나눠 생각해봤어도 많이 해결되지 않았을까. 인테리어용 소반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반의 디자인이 확연히 다른 것, 뜬금없이 느껴진 칠기 쟁반, 방석의 모양새까지도 잘 맞출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악도 신경 쓰였다. 은은한 국악 멜로디가 나오긴 했지만, 요즘 음악처럼 편곡된 것들이었다. 궁 안에 들어와 있으니 이왕이면 정악으로 선곡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건 다들 모르겠지' 싶은 포인트.
맥락을 살린다는 것은 잘 이해한다는 것이고, 잘 이해한다는 것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섬세한 기획은 아니었지만 소주방 복원 후 이런 식의 팝업 카페를 궁 안에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다. 궁 안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 느낌. 다음 시즌에는 조금 더 신경 써서, 더 풍부한 경험을 갖고 갈 수 있도록 개선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