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oozoo Dec 30. 2019

전통을 살린 공간, 생과방

복원 그 이상의 가치는 부족했던 팝업 카페

(2019.10.31. 방문)

경복궁 한복판에 특이한 팝업 카페가 열렸다. 엄숙하고 차분한 궁 한가운데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실 수 있다니 얼마나 특별한지! 봄, 가을에 딱 몇 개월만 운영한다고 해서 올해 마지막 운영일에 냉큼 다녀왔다.


소주방 권역에 있었던 생과방 ⓒ 우주 OOZOO


생과방은 경복궁의 부엌, '소주방'에 있었다고 한다. 소주방은 경복궁을 지을 때 함께 만들었다가, 화재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실되었다. 2011년부터 복원공사를 진행해 지금은 소주방 전역의 전각이 복원된 상태다.


소주방은 각 음식의 쓰임에 따라 외소주방, 내소주방, 생과방(생물방)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생과방은 떡이나 다식, 강정 등 후식이나 별식을 준비하던 곳이라 지금으로 따지면 디저트부쯤 될 것이다.


복식 구경하는 재미 ⓒ 우주 OOZOO


미로 같은 전각 사이를 지나 생과방에 다다랐을 때, 직원의 복식 덕분에 마치 조선시대로 발을 들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주방 사람들이 입었을 법한 한복에 탕건 같은 모자. 건너편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개성 주악과 강계다 ⓒ 우주 OOZOO


메뉴는 실제로 생과방에서 만들었던 다과와 차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단출한 구성이 아니어서 놀랐고, 가격이 무척 저렴해 한번 더 놀랐다.

엄청나게 특색 있는 것들은 아니었지만 한옥 안에서 먹는다는 점이 후한 점수를 주게 한다. 체험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일까. 다과는 모두 미리 만들어두어 불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맛은 짐작할 수 있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궁 안에서 차를 마신다'는 경험 자체만 본다면 생과방 방문은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이 공간과 역사, 맥락을 잘 살려내지 못했던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어떤 시대, 공간, 문화의 맥락을 이어내는 작업은 단순 복원 그 이상의 가치 또는 의미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궁 부엌에서 먹는 그때 그 메뉴'라는 두루뭉술한 컨셉이 조금 더 뾰족했더라면 더 풍부한 콘텐츠가 됐을 것이다.


시선의 높이에 따라 풍경이 달라졌던 창문 ⓒ 우주 OOZOO


우선 어떤 취지로 이런 팝업 카페를 여는 것인지, 전각 복원에 더해 이러한 무형적인 복원이 왜 필요한 것인지, 소주방과 생과방은 무엇을 하던 곳인지를 간단히 설명하는 브로셔가 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들어가지 마시오'가 잔뜩 붙은 궁 안쪽,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경험이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다.


예쁜 사진 찍고, 대충 차 한 잔 마시고 떠나는 소비적인 경험으로만 남거나 카페 투어의 한 코스로 지나쳐버리기보다, 유/무형적 복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로 전환시켜주었다면 팝업 카페의 취지를 더 잘 살려주지 않았을까.


차분해서 좋았던 공간 ⓒ 우주 OOZOO


언뜻 생각해봐도, 소주방은 몇 세기에 걸쳐 운영되었을 테다. 그 긴 시간 중에서 특정한 어떤 시대를 컨셉으로 할지가 분명했다면 메뉴, 복식, 소반, 쟁반, 그림, 심지어는 음악 같은 디테일들도 더 세심하게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크게 조선 전기, 중기, 후기로만 나눠 생각해봤어도 많이 해결되지 않았을까. 인테리어용 소반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반의 디자인이 확연히 다른 것, 뜬금없이 느껴진 칠기 쟁반, 방석의 모양새까지도 잘 맞출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악도 신경 쓰였다. 은은한 국악 멜로디가 나오긴 했지만, 요즘 음악처럼 편곡된 것들이었다. 궁 안에 들어와 있으니 이왕이면 정악으로 선곡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건 다들 모르겠지' 싶은 포인트.


언젠가 경회루에서도 열리면 좋겠다 ⓒ 우주 OOZOO


맥락을 살린다는 것은 잘 이해한다는 것이고, 잘 이해한다는 것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섬세한 기획은 아니었지만 소주방 복원 후 이런 식의 팝업 카페를 궁 안에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다. 궁 안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 느낌. 다음 시즌에는 조금 더 신경 써서, 더 풍부한 경험을 갖고 갈 수 있도록 개선되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스러운 공간, 아모레 성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