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큐레이션, 커뮤니티의 가능성까지
(2019년 12월 방문)
홍대에 특이한 공간이 생긴다고 듣고 한참을 못 가다가 12월 어느 토요일에 다녀왔다.
합정역에서 무척 가깝지만,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지하로 내려가면 아담한 공간 하나가 나오는데, '여긴가?' 싶을 때 친절한 사이니지가 등장한다. 문 앞에도 역시 잡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첫인상은 '알차다'였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잡지가 있어 놀랐다.
인스타그램으로 구경했을 때에도 느꼈지만, 역시 실물을 보니 운영진이 얼마나 세심한 기획으로 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루짜리 이용권을 끊고, 가장 아늑해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 근무하시던 분께서 어떤 주제에 가장 관심 있는지 물어보셔서 '공간'과 '커뮤니티'를 꼽았다.
찬찬히 둘러보니 거의 모든 주제의 글을 갖고 있는 공간이었다. 매달 다른 주제로 잡지 여러 권을 함께 묶어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힘인 것 같다.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 그냥 쉬어 가기에도 무척 좋은 공간이었지만, 이 곳을 아직도 멋진 곳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운영진이 내 관심사에 맞는 잡지를 직접 큐레이션 해준다는 점이었다.
내 나름대로 몇 가지를 골라 한참 읽고 있는데, 자리로 오셔서 거의 4-5권 정도를 소개해주셨다. 어떤 이유로 골라오셨는지, 어떤 부분에서 도움/흥미를 얻을 수 있을지 쭉쭉 설명해주셨다. 명확하고 흥미로운 설명이었다.
같이 갔던 친구는 그때 보고 싶었던 것을 골랐는데, 골라 간 그 잡지에서 확장시킬 수 있는 다른 잡지를 추가로 가져다주셨다.
이런 방식의 큐레이션이 이 공간에 어울리는 딱 적당한 친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을 처음 이용하는 사람이 낯선 공간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고, 관심사를 살펴 공간과 콘텐츠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돕는 것. 그리고 그 친절 때문에 계속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게 하는 것. 이것이 종이잡지클럽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친절하다'는게 참 다양한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하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니까. 서비스가 다양해서, 운영자가 몹시 다정해서, 사이니지가 충분해서...
내가, 또 내가 운영하는 공간에서는 어떤 친절을 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볼 만하다.
또 하나 눈 여겨봤던 점은 화장실.
화장실 가려고 여쭤봤더니 바구니 하나를 건네주셨다. 화장실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담긴 바구니.
건물 화장실을 나눠 쓰고 있어서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이 바구니 하나로 화장실 경험이 달라졌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르게 대처할 수 있는 세심함이 고맙고 귀여웠다.
큐레이션을 할 수 있다면, 다양한 주제에 맞는 모임이 생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주제별 커뮤니티가 생길 수도 있고, 종이잡지클럽을 중심으로 '텍스트'나 '잡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꾸려볼 수도 있겠다.
어떤 방향이든 1)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고, 2) 그것이 지속 가능하다면 커뮤니티는 자연 발생하는 유기체같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더욱 느낀다. 사람 하나 하나는 점이지만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