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독후감
시간이 흐르는 사진 같았던 존 버거의 글. 글을 다 읽고 제목을 다시 보면 글 속 풍경이 저절로 흘러 영화처럼 기억에 남는 것이 좋았다. 어떤 인물의 차림새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기도 하고, 거리의 풍경을 천천히 전해주기도 하는 문장을 보면서 궁금했다. 나는 언제 관찰하고 있을까. 왜 관찰해야 할까. 오늘 만난 세 사람과의 각기 다른 대화가 나에게 답을 주었다.
오후에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에게서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질문을 잘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건 내가 질문 천재여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기울인 호기심 덕분이다.
이야기를 바깥으로 꺼내는 데에는 호기심이 필요하다. 정말로 궁금하고, 알고 싶어야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어봐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말이 되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불안, 단어 하나에 슬쩍 묻어있는 기대감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호기심 덕분이었다. 이때 관찰이 큰 힘이 된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물어보고, 알아봐야 할 것을 제때 발견해낼 수 있다.
한편 세 개의 대화를 복기하며 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의 모습이었다. A가 긴장감을 말하며 어깨를 위로 삐쭉 솟아오르게 했던 모양, 조심스럽게 책장을 들춰보던 B의 손가락, 신호등 앞에서 이따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뒷좌석으로 시선을 보내던 C의 뒤통수.
일부러 눈에 힘을 주거나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대화 내용과 함께 이미지가 솟는 건 아마도 그 순간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일 테다. 다른 생각을 (때로는 감각조차도) 모두 잊을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대화를 나눌 때면 상대를 오래 바라보고, 더욱 살피며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럴 때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관찰해버린 무엇이 남는다.
관찰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것과 같다. 주의가 다른 곳을 떠돌게 내버려 두지 않고 이야기가 오가는 지금,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힘은 명상과 닮았다. 호기심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물어보게 만들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찰은 순간순간을 살아있는 것, 알기 위해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