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

by 믈름

정리 정돈은 꾸준히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좀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데, 쓸모 있는 것과 쓸데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런 사람이라서일까. 조금이라도 삶의 여유가 없어지거나 컨디션이 나빠질라치면 내 방은 역겨울 정도로 더러운 공간으로 변모하고는 했다. 그렇게 쓰레기투성이의 방에서 한참을 지내다가,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혼을 내면 그때가 되어서야 겨우 하나둘 널브러진 허물을 주워 올릴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옷을 옷걸이에 거는 것이다. 귀가 후 탈의할 때 걸어두면 된다는데, 어쩐지 그것마저 힘들 때가 있다. 침대에, 의자에, 때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옷들은 꼭 무언가의 허물처럼 보였다.


다음으로는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계속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먼지가 안 쌓일 리 없다. 나의 그리 건강하지 못한 호흡기를 위해서라도 환기는 필수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면, 비로소 쓰레기를 버릴 수 있게 된다. 쓰레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하나씩 먹었던 과자나 아이스크림 봉지, 쓰다 만 글 조각, 반쯤 채운 노트, 시작했다 포기한 뜨개옷, 어릴 적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 후배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 선물한 의미 모를 기념품, 출장을 갔다가 가져온 지역 관광 리플렛, 더럽게 재미없었던 공연 티켓….


음, 문장을 다시 확인하자. ‘버릴 수 있게 된다’지, ‘버릴 수 있다’가 아니다. 좁은 방 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던 쓰레기를 하나씩 살펴보다 보면, 저 멀리 닫아두었던 좋고 나쁜 기억들이 물건을 계기로 수면 위에 부상하고는 했다. 그러면 나는 아직 ‘쓸모 있는 물건’이라며 다시 쌓아놓고,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왜 이렇게 정리를 못할까.


내 방에 쌓여있는 물건은 이러나저러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이었다. 가장 멋진 것들은 이미 어디로 팔려 나갔고 그야말로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조각들을 쌓고 쌓고 또 쌓다 보면 언젠가 내 가슴에 뻥하고 뚫린 구멍을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물건이라는 계기가 사라지면 나는 좋은 기억을 다시는 되새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내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과거의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 사실이 언제나 두렵다.


한심하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과거만 헤집는 꼴이 우습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이런 것들마저 기억하고 싶은 걸까.


오기라면 오기에 불과할 테지만, 이렇게 미련한 나도 나라고 ‘쓸모없는 것’이라는 딱지를 차마 붙일 수는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비워야 채울 수 있다지만 어차피 평생 채워나가야 할 인생이다. 한두 곳이 터져서 쌓여있어도 뭐, 지금 당장 큰일이 터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직은 내 기억들을 ‘쓸모없는 것’이라고 분류하지 않은 채로 어루만져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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