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6 일기
세 번의 임신, 한 번의 출산.
2번의 유산을 하고 우리 부부에게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2년간 반복된 유산에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내색하지 않고 각자의 아픔을 정리하기도 했다.
첫 번째 유산을 진행하고 있을 때
병원에서는
“일주일만 지켜보자 “ , ”삼일만 지켜보자 “
“내일 다시 초음파 해봅시다 “ 했다.
매일매일 피 말리는 하루였다.
그 당시 21년도 다니엘기도회가 진행이 되고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 그 시간은 소망과 위로의 시간이었다.
비록 태아는 심장이 늦게 뛰고 자연스레 멈췄고
소파술 수술로 임신을 마무리했었다.
2년이 지난 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침대에 아기를 눕히고
23년 다니엘 기도회 예배를 드리는데
그 당시 불렀던 찬양을 부르니 다시 그날이 회상됐다.
그 당시 ‘역전되리라’라는 찬양과 말씀으로
그래 역전될 거야 우리 태아가 심장이 건강하게
뛸 거야 울면서 기도했던 우리 부부가 생각이 나더라.
옆에서 앉아있던 남편한테
“오빠 그때 생각난다. 우리 처음 유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서 말을 끝까지 못했다.
근데 옆에 있던 남편은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
그 역시도 말을 끝까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남편이 우는 건 정말 보기 어려운데
남편이 저렇게 우는 걸 보니
아기를 품고 차가운 수술대에서 수술을 해야 했던
나만 슬펐던 게 아니라
처음으로 아빠가 됐었던 우리 남편도
슬프고 아팠구나 싶었다.
6년의 연애와 4년의 결혼생활 중
행복하고 특별했던 추억만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프고 아팠던 기억이 우리를 더 단단한 관계로
만들어줬구나 싶어 이제야 진짜 감사가 나왔다.
하여튼
혹여나 뱃속의 태아가 이전과 같이 잘못될까
10개월을 마음을 졸이다가 건강하게 아기를 낳았고
어렵게 만난 아기라 행복했지만
매일매일이 나에게는 미션이었다.
너무 이쁜 우리 아기. 한 순간이라도 눈에 담아두고 싶어 보고 또 보고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힘을 합해 최선을 다해 육아를 했다.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편은
몸의 변화로 예민해진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늘 곁에서 외롭지 않게 다독이며 꼭 안아줬다.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하루 속에
나는 조금은 지치고 있었다.
이쁘고 소중한 아이를 보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기를 차갑게 쳐다보기도 한다.
남편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시계를 보며
‘조금만 힘내자 조금만 힘내보자.’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피곤하여 푹 자고 싶은데
아기의 작은 소리에도, 작은 움직임에도 눈이 번쩍 떠졌다.
결국 한 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는 나는
피곤함과 예민함이 점점 심해졌고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잘 자는 남편이 얄미워
괜히 툴툴 싸가지를 부렸다.
(남편 미안해..)
어느 날은
아기를 데리고 낮잠을 자는데
방이 너무나도 고요하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데
세상에 나와 아기만 남겨진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울렁울렁거렸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누군가는 호르몬이라 하며
누군가는 산후우울증이라고도 한다는
이 울렁울렁 이 자주 찾아왔다.
그래도 아기가 나를 향해 웃어주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열심히 젖병을 빠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고
아기가 내 배 위에서 얼굴이 터질 듯 힘을 주며 응가를 해도,
기저귀를 갈다가 오줌을 맞아도 천진한 너의 얼굴에 그저 웃음이 나고 행복하다.
부모의 마음을 조금을 알 것 같다.
샤워를 하다 늘어난 뱃살과
축 처져버린 가슴.
임신 중 빨갛게 터져버린 아랫배와 가슴을 봐도
제왕절개로 인한 흉터가 선명하여 근심이 돼도
그래도 너라는 생명을 허락받았으니 괜찮다.
나를 잃고 너를 얻었을지라도
어쩌면 그걸로도 충분할지도..
이러한 너를 향한 사랑의 마음조차
너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이 되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엄마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