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간의 프랑스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서울 가기 싫다. 아니 그렇게 단언할 정도로 명료한 마음은 아니고, 가고 싶은 마음 30퍼센트 지금의 일상이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 70퍼센트. 사실 서울에 가고 안 가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든 아니든 돌아가야만 하니까. 그렇지만 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 30퍼센트를 구성하는 건.. 이 글을 읽을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사람이 아니다. 가족도 아니고.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야 세상 어디에나 노력하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깊이야 다르겠지만.
첫 번째는 영화다. 9월부터 지금까지 2편밖에 보지 못했다. 볼 수 있는 창구가 없기도 하고 느긋하게 누워서 영화 볼 심적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전국제도 부천도 다 그립다. 내 나라 언어로 영화를 보고 온전하게 이해하던 일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의수가 사준 아이패드 거치대에 아이패드를 걸고 누워서 눈만 뜬 상태로 영화 보던 밤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영화는 나에게 현실 도피용이었다. 2시간 동안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없으니 쏟아지는 현실들을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해야 한다. 버겁다. 그러니까 자꾸 애먼 데 의지하려고만 하고 정신이 가난해지는 것 같다.
두 번째는 놀랍게도 뉴스다.. 이 관련된 글을 비계에도 썼었는데, 조금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뉴스를 읽지 못하는 건 지금 내 외로움의 근원이다.
한국에서도 매일매일 뉴스를 읽진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읽는 시사인도 밀리기 일쑤였고. 그치만 적어도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싶어서 매일 뉴스 헤드라인이라도 훑어보곤 했다. 하지만 여기에선? 솔직히 한국 뉴스를 읽는 건 프랑스에서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나의 프랑스어 실력으로는 이곳 뉴스를 읽을 수도 없다. 그러니 내 생활반경 밖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코로나가 얼마나 심한지도 모른다. 내가 오로지 관심 있는 건 점심과 저녁 메뉴, 장바구니 물가, 전공 공부 ppt, 학교와 기숙사 행정, 여행, 음악,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사람들이 올리는 것. 그러니까 시야도 딱 그만큼으로 축소된다.
위에 말한 것들만으로도 이미 삶은 고단해서, 이런 생각도 하지 못할 뻔했다. 뉴스를 읽지 못하는 것이 외로움의 원인인 걸 깨닫게 된 계기는.. 요즘 프랑스에서 여성단체 시위가 아주 크게 있다고 한다. 3일에 한 명꼴로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여성이 사망하는데, 이러한 폭력 방지책을 요구하는 시위이다. 부끄럽지만 난 이걸 이화이언 눈팅하다가 알았다. 고백하자면 프랑스에 와서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생계가 바쁘니 사유는 뒷전인 거지. 여기에선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고, 쓸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일기가 아닌 글을)이 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사회와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견디기 힘들다. 결국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언어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프랑스어를 아주 잘했다면 이런 결핍은 있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건 한국어이고, 그게 서울에 가고 싶은 이유가 된다. 서울에 가서 뉴스도 읽고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느낌을 다시 가지고 싶다.
아무튼 저널리즘 전공자로서 저널리즘과 언어의 중요성을 프랑스에 와서야 느끼는데. 실은 이 생각 하면서 기자 직업에 확신이 조금 들었다. 소통의 최전방에는 누군가 있어야 전해주든지 말든지 할 테니.
서울에 가고 싶은 이유는 여기까지이다. 그런데 좀 비겁하게 생각해본다면, 세상 돌아가는 걸 꼭 몰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지금 내가 그렇잖아? '비교적' 화날 일도 없고 머리 아플 일도 적기 때문이다. 이런 삶도 좋다고 생각한다 일시적으로는. 그래서 현재 70퍼센트 한국 가기 싫은 거고. 그렇지만 6개월이면 충분하다. 난 다시 사회적 인간으로 살고 싶고, 그래야 할 당위를 느낀다 매일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