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부럽다. 별 거 아닌 것들. 다 죽을거면서. 죽은 친구가 옆에 있어도 자기 죽을 건 생각 안 하는 것들. 그러니까 저렇게 단정하구나. 예쁘고 단정하게 잘 놀자.”
영화는 죽음을 내재하고 흘러간다. 죽음을 둘러싼 제 각각의 이야기들이 ‘카페’라는 한 장소에서 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서운한 말을 하고, 그 과정에서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살아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말하고, 나누고, 연대한다.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딘가 풀잎들이 연상된다. 비 맞아도 그 비를 머금고 꼿꼿하다. 옆에 있는 몇 개의 풀잎이 죽어 쓰러져도 몇몇은 조용히 푸르다. 왜 이 작품의 제목은 ‘풀잎’이 아니고 ‘풀잎들’인가?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에. 그러니까, 아름이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엔 남들과 어울렸던 것처럼. 그냥 살아서, 같이 잘 놀자.
<풀잎들>은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를 연상케 한다. 두 작품 모두 인간과 인간 사이 고요히 이어지는 대화 그 자체에 주목한다. 풀잎들의 대화들은 좀 더 ‘몽상’같다. 겉보기엔 의미없이 흘러가는 듯한 단편적인 대화들이 결국엔 사랑, 사람, 감정에 대한 하나의 몽상을 이룬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모든 대화의 배경이 되는 카페는 ‘오실’일 것이다. 가지각색의 대화들이 카페 안에서 겹겹이 쌓여 결국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삶의 생기라는 것은 어쩌면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발현된다. 이 영화의 화면은 흑백이지만, 이 ‘오실’ 안에는 생기가 가득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