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SF
드라마이자, SF이자, 미스터리이자, 판타지인 이 영화는 뭐라 한 마디로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이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한 데 뭉쳐 공통적으로 ‘우울’을 향해 나아간다.
오프닝은 강렬하다. 공통적으로는 떨어지는 물성에 대해 다루는데, 저스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가운데 새가 떨어지고, 행성 멜랑콜리아가 지구를 향해 떨어진다. 이후에는 1부에서 결혼식에서 우울증을 호소하며 도망치는 저스틴의 시퀀스가, 그리고 2부에서는 저스틴에 집중된다기 보다는 그녀의 언니인 클레어가 멜랑콜리아와의 충돌을 앞두고 우울과 두려움, 불안 등에 몸서리치는 시퀀스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2부인데, 점점 지구에 가까워져 곧 충돌할 듯 보이는 멜랑콜리아를 바라보며 클레어는 두려움에 잠식되지만 저스틴은 놀라운만큼 태연하다. 이 부분에서 우울증은 행성 충돌에 대입하여 설명될 수 있다. 어째서 클레어는 지구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가? 그녀 안의 생과 활기로 표상되는 지구는 이미 멸망했기에, 그녀 외부의 지구가 행성에 충돌하여 멸망하든 말든 그 자신은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멜랑콜리아>는 라스 폰 트리에가 우울증을 겪는 중에 창작된 작품이기에 창작자의 우울증이 가장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우울증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많지만, 이렇게 행성의 충돌과 연결시켜 위압감을 가지고 보여줄 수 있는 영화는 아마 멜랑콜리아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우주의 먼지인 인간이 겪는 우울을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우울의 SF이다.
<멜랑콜리아>는 여성 연대 측면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저마다 우울을 가지고 있다. 그 우울의 종류는 주로 사회적 시스템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할 때, 예를 들어 결혼이라든지,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든지와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우울은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더욱 심화된다. 그 과정에서 남자들은 나약하다. 클레어의 남편은 자살을 선택하고, 저스틴의 결혼 상대는 도망친다. 하지만 우울의 한가운데에서 몸서리 치면서도 그녀들은 끝까지 멜랑콜리아와의 충돌을 직시한다. 나무로 만든 텐트와 안에 세 사람이 웅크리고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은 잔혹하지만 기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에 따르자면, 멜랑콜리아를 우울 너머 평행 우주의 한 부분으로 볼 수도 있다. 암흑과 같은 우울을 직시하지 못해 도망치고 자멸한 남자들과, 평행우주 너머의 클레어와 저스틴은 아마 사악한 지구를 떠나 멜랑콜리아에서 좀 다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