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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Mar 10. 2020

나 홀로 바로 섬

<라이프 오브 파이>(이안, 2012) ⓵

요즘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찾아라, 질문하라, 궁금해하라!” 살면서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져야, 답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기심 가득한 소년은 여러 종교를 통해 진리를 탐구한다. 아버지는 과학과 이성을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다. 어머니는 사랑 많은 성품으로, 남편을 존중하면서 아들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야기 전개는 빠르고 명확하다. 파이 가족의 배경 설명은 물론, 화물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기까지 군더더기가 없다. 그리고 바다에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 둘이 남는 과정도 단순하다 싶을 정도로 명료하다. 한 사람의 삶을, 그것도 일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어떻게 이리도 명확할까. 그것은 이안 감독이 ‘삶이란 명확한 것’이란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안 감독은 그동안 숱한 영화를 만들면서 ‘삶의 단순함’을 깨달은 것 같다. 그는 사건 전개, 인물 감정 묘사에 그 어떤 낭비도 허락하지 않는다. 캐나다 이민, 바다에서 가족과 이별 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들도 단순하게 묘사된다. 왜냐하면, 광활한 바다 위에 그가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파이의 삶과 구원의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파이는 타인과의 관계보다, 자기 삶 자체에 집중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망망대해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음식을 확보하고, 구명보트에 있는 생존 매뉴얼을 분석해, 살아날 가능성을 높인다.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구명보트와 연결된 작은 뗏목이다. 그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배를 만들고, 시간이 갈수록 생존에 유리하게 변화한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타인과 올바른 관계는 ‘나 홀로 바로 섬’에서 시작된다. 이기적인 생각일까? 홀로서기도 힘든 세상! 누군가 힘들면 다가가 함께 아파하다가도,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감정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살고, 인생에 단 한 번, 타인의 죽음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테니.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다. 나 홀로 바로 선 이후 향할 곳은 다름 아닌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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