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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Mar 13. 2020

호랑이 눈을 마주할 용기

<라이프 오브 파이>(이안, 2012) ⓶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때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어두운 길에 끝이 없다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끝을 보기 위해 정신 차리고 달릴 것인가. 아니면, 핸들을 놓고 생을 마칠 것인가. 파이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바다에는 분명 끝이 있지만,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먼 길. 하지만 소년은 인간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곳에서, 신의 존재를 강하게 느낀다.      


처음엔 가족을 데려간 신을 원망하다가, (신이 창조한) 대자연 앞에서 황홀경을 느낀다. 신과의 투쟁을 준비하다가, 결국 신의 절대적 힘 앞에 무릎 꿇는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위협이 가득하고, 끝을 알 수 없어도, 삶의 여정을 계속하는 것. 신은 위기의 인간을 외면하지 않고, 끝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어제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도, 소년은 삶에 대한 열망을 느낀다.     


거친 파도를 몸소 겪으며 파이는 생존 이상의 의미를 발견한다. 살기 위해 거친 숨을 내쉬다, 어느덧 그 숨이 신의 숨결과 닿아있다는 걸 느낀다. 찾지 않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삶. 그는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고통이 자신을 성숙시키고, 신과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인다. 바다에 홀로 남겨진 소년은 어느덧 구도자가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는다.     


파이의 여정에 리처드 파커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좁은 공간에 호랑이와 둘이 있다면, 멀리 쫓든지 죽이든지 해야 내가 살 것 같다. 그런데 파이는 회상하기를, 호랑이 덕분에 자신이 살았다고 한다. 호랑이로 인한 긴장과 훈련이 없었다면, 그는 호랑이보다도 훨씬 거칠고 위험한 바다에서 진즉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파커가 떠나지 않았기에, 신을 구하고, 자신을 찾은 것.      


파이는 우리고, 바다는 인생이다.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는 것은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만약 우리가 편하고, 쉬운 것만 택한다면 날로 거칠어지는 바다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탐욕의 돼지, 멍청한 원숭이, 나약한 양이 되어 언제 어떻게 삼켜질지 모른다. 어릴 적엔 피하고만 싶었는데, 지금도 매우 힘들어 하면서도, 호랑이의 눈을 가만히 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전 인류가 너무 가까이 사나운 맹수를 마주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끝까지 싸우길. 고난을 희망의 씨앗으로 틔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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