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찾다가, 넷플릭스에서 <로마제국>을 만났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칼리굴라, 콤모두스를 주인공으로 3개의 시즌, 15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생생한 인물들이 펼치는 드라마와 연구자들의 해설이 교차해 재미와 정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선정성 높음’ 경고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때엔, 애들은 잘 자는지 살펴야 했다.
나체의 여성들보다 기억에 남는 건, 거리의 여인들이다.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 사라진 눈빛은, 힘없이 강렬하다. 그들의 삶은 화려한 궁중의 것과 비교되면서 더 비참하게 느껴진다. 황제들은 백성을 위로한답시고 콜로세움에서 검투 시합을 여는데, 거기서 흥분해 소리치는 사람들 모습은 더 슬프다.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건 아주 오래된 인류의 전통인가.
불행히도(혹은 다행히도) 황제의 삶도 행복하지만은 않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원하면 어떤 여자와도 관계를 맺으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면서도, 늘 불안하다. 백성들의 환호는 쉽게 원망으로 바뀌고, 주변에는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의 살기가가득하다. 황제가 죽으면 가족이 몰살당하는 절박한 현실에, 그들은 살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
<로마제국>을 보면서, ‘자리의 무게는 달라도, 인생의 무게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따라 영향력은 다르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한 사람의 피로도는 같다는 말이다. 백성은 배고파 굶주리지만, 황제는 사랑에 굶주린다. 백성은 할 일이 없어 괴롭지만, 황제는 신경 쓸 일이 많아 괴롭다. 백성이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황제가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미치광이 황제’, ‘피의 지배’란 부제처럼, 황제들은 서서히 미쳐가고 잔인해진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 그래서 더 지키기 어려운 자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힘으로 짓누를 수밖에. 제국의 영광은 허울뿐,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내인생이핏빛으로물드는 걸 막기 위해 다짐한 게 있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삶,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삶을 살겠다.
누군가는 칼을 쥐고,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환호하는 쾌락의 지옥. 칼을 쥐고 싶지도, 피를 흘리고 싶지도, 타인의 고통을 보며 환호하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