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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Mar 31. 2020

웃는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

<천리주단기>(장이머우, 2006) ⓵

홀로 어촌에 사는 다카타(다카쿠라 켄)는 10년 전 연락을 끊은 아들이 아프단 소식을 듣는다. 그는 도시 병원으로 향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거부한다. 그때 며느리가 준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켄이치가 경극에 애정이 있으며, 올해 경극 ‘천리주단기’를 보러 중국에 가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카타는 아들을  ‘천리주단기’를 찍으러 낯선 중국 땅을 밟는다.      


다카타는 병원에서 아들을 못 본 것처럼, 중국에서 ‘천리주단기’장인을 만날 수 없다. 동료를 칼로 찔러 감옥에 갔기 때문이다. 그는 ‘어차피 경극은 가면을 쓰고 있어 누가 하든 상관없다’는 주변의 권유를 물리치고, 감옥에 있는 장인을 만난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보고 싶다며 공연을 거부한다. 다카타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장인의 아들 양양을 데리러  길을 떠난다.


<천리주단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이야기다. 아들은 간암 말기로 죽음을 눈앞에 두었고, 아버지는 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기 위해 자기를 포기한다. 다카타는 낯선 중국 땅에서 아들의 흔적을 찾는다. 아들이 만났던 사람을 만나고, 아들이 보았을 산하(山河)를 보며, 아들의 외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느낀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손잡을 수 있었을 텐데.     


다카타는 통역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무력함을 느낀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중국말에 홀로 버려진 듯한 소외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행동도,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오히려 바다를 마주한  편안하다. 바로 그때 다카타는 아들의 마음에 공감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잃어버려야 편안함을 느끼는 아들의 고통을….     


이것이 아들 켄이치가 경극에 빠져든 이유이다. 그는 아버지와 떨어져, 괜찮은 듯해도, 할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살았다. 경극은 자신의 표정을 두꺼운 의상과 화려한 가면 속에 숨길 수 있어 좋다. 오늘 하루도 나는 몇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았나. 어울리지도 않는 가면을 쓰기도, 벗기도 쉽지 않다. 나쁘지 않은 삶인데, 불현듯 웃는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면을 쓰고 산다는 점에서, 인생은 긴 경극일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맞는 가면을 쓰고, 가끔은 다 벗고 큰 숨을 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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