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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Apr 01. 2020

사랑할 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천리주단기>(장이머우, 2006) ⓶

바다에 홀로 사는 어부 다카타와 타인의 삶을 는 경극 장인은 상반된 인물이다. 다카타는 아들과 연락을 끊고도 슬픔이나 그리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에 장인은 아들이 그리워 눈물, 콧물을 쏟아가며 뜨거운 부정을 표출한다. 다카타는 그런 장인이 부럽기만 하다. 자신도 감정을 그처럼 보일 수 있면 아들과 진작에 화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장인은 경극이 끝나면 가면을 벗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반대로 다카타는 늘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일상이라는 긴 경극을 펼친다. 아들인 켄이치는 표정 변화가 없는 인물들을 보며 누구를 떠올렸을까? 바로, 아버지! 그는 경극을 보며 철저히 밉기만 했던 아버지를, 전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으나,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에, 무대를 떠날 수 없다.     


석촌에서 양양을 찾아 장인이 있는 감옥에 가는 길. 트랙터가 마을을 떠나기 전, 양양은 줄행랑친다. 다카타는 양양을 쫓아가고, 둘은 일행과 멀리 떨어져 넓은 돌산에 갇힌다. 다카타는 양양에게 말을 걸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양양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병원에 있는 켄이치가 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아들의 아픔을 공감한 그는 이제 물러서지 않는다.     


다카타는 바다에서 불던 호루라기를 분다. 양양은 맑은 소리의 물건이 궁금해 둘은 가까워진다. 기를 불던 양양은 지쳐 잠들고, 다카타는 그를 품에 안는다. 오랜 기간 잃었던 아들을 안듯이. 다카다는 아버지에게 가기를 거부하는 양양을 두고 차를 타고 떠난다. 그때, 양양은 호루라기를 불며 다카타를 향해 달려간다. 홀로 울리던 소리는 듣는 이가 생겨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간 곳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들이 서로에게 느꼈을 미안함과 후회는 때늦은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확신한다. 그들이 화해했음을, 그리고 사랑했음을. 우리의 인생은 아버지가 먼 길을 간 것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반드시 끝이 있고, 어쩌면 그 끝은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할 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은 아름답다. 누구도 아름답고,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다. 그래서 더 좋다. 우리의 사랑이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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