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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Apr 06. 2020

꿈이란 첫사랑 같은 것

<칼리토>(브라이언 드 팔마, 1993)

채팅 사이트 ‘세이클럽’이 유행할 때, 한창 뻐꾸기 날리던 내 아이디는 ‘칼리토’였다. 그때까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칼리토>였기에. 고등학생 시절, TV가 안방에 있어 부모님 주무실 때, 볼륨을 2로 보다, 야한 장면이 나오면, 음소거를 해가며 본 작품.(갱영화라 ‘청불’인줄 알았지, 야할 줄은 몰랐다.) 어느덧 나이가 가까워지고, 꿈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5년을 감옥에서 보낸 칼리토(알 파치노)는 자신이 완전히 변했다고 말한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마약 거래상으로 백 명에 가까운 부하를 두고, 부와 명성을 누렸던 사내, 30년형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거리에서 차가운 시체로 발견되는 게 두려운 그는, 뒷골목을 벗어나 아름다운 섬에서 렌터카 사업을 하는 꿈을 꾸고 있다. 태어나 처음 만난 꿈이다.


칼리토는 낙원에 동행할 옛 애인 게일을 찾는다. 무대에서 화려한 춤을 추는 배우가 된다는 꿈을 갖고 쉼 없이 달려온 그녀. 하지만, 현실의 무대는 스트립 바이고, 자신은 아직 열정적이고, 순수하다 말하지만, 그녀는 꿈을 포기하기 직전이다. 꿈을 꾸기 시작한 남자와 꿈을 접기 전인 여인은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천국에 갈 날만 꿈꾸듯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길을 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이다. 칼리토는 변했지만, 살기 위해 칼을 품고, 이기기 위해 칼을 총으로 바꾼 그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피로 얼룩진 그가 따뜻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변호사 친구 데이브(숀 펜)는 과거에 그가 팔던 마약에 잔뜩 취해 그를 밑으로 끌어당긴다. 그도, 게일도 원치 않았지만, 칼리토는 가야만 한다.     


데이브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칼리토는 위협을 받는다. 그는 친구를 탓하지만, 그가 탓 사람 또한 자기 자신이다. 그동안 스스로 선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당한 자들은 동의할까. 꿈을 좇던 그는 어느덧 적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낙원이 눈앞에 다가와 있기에,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기에, 또 그녀는 새 생명을 고 있기에, 발걸음은 더 처절하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


꿈이란 첫사랑 같은 것. 달콤하고 설레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꿈)을 위해 자신(사람)을 포기하라고 한다. 열심히 달려가고, 때로는 미끄러지고,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면, 어둠 속에서 남 같은 나를 발견한다. 게일은 말한다. “모두 다 어쩌다 지금의 자신이 되었어.” 첫사랑은 이룰 수도, 지울 수도 없다. 꿈꾸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 꿈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꾼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일상을 살고, 일 년에 한 번 나를 잊을 수 있는 여행을 떠나는 것. 황금빛 석양의 해변에서 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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