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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Apr 15. 2020

비극의 주문, ‘난 너와 달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 2019)

* 스포일러 있습니다. 아니 모두 스포일러.     


몇 년 전 일이다. 은동이(개)가 풀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었다. 잡으려고 손을 대자 으르렁거리며 물려고 했다. 짐승의 야성에 놀라 목줄로 힘껏 등을 내리쳤다. 맞은 개도, 때린 나도 놀랐다. 극적인 화해를 했으나,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개를 다른 존재로 느끼는 순간, 감춰진 폭력성이 드러났다. 갑자기 개타령을 하는 이유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때문.      


닉(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빛을 잃어가는 왕년의 액션스타다. 술과 담배에 절어 사는 그는 한때의 영광을 잊지 못한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8살 소녀의 응원에 가슴 뭉클한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높아, 영화인, 셀럽과 보통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반대로 닉의 스턴트 대역 클리프(브래드 피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히피와도 대화를 나눈다.     


보통 사람은 올 수 없는, 할리우드 스타만 사는 주택가에 히피들이 들어오자, 닉은 불같이 화를 낸다. 어딜 감히! 사유 도로인데! 약에 절어 사는 것들이! 난 너와 달라! 차를 뺀 히피들은 살인 대상을 ‘자신들에게 폭력만 보고 자라게 한’ 액션스타로 변경하고 그의 집에 침입한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전쟁영웅 클리프. 이소룡도 맨손으로 때려눕힌 그가 어떻게 할까.     


클리프의 액션이 폭발한다. 무장한 이에게 폭력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수위가 정당방위를 넘는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본인의 장기를 살려, 침입자를 피떡으로 만든다. 이때 클리프는 집시에게서 산, 마약에 담근 담배를 피우고 제정신이 아니다. 집시를 차에 태워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준 젠틀한 남자가 아니다. 그에게 그들은 사람 아닌 괴물로 보였을지도.     


닉은 화염방사기로 히피 여인을 새카맣게 태운다. 마치 영화인 듯 광기 어린 모습이 끔찍하다. 사건 직후 옆집의 여배우 샤론(마고 로비)을 대하는 세상 착한 태도는 소름 끼친다. 클리프의 일탈은 닉의 일상이고, 타인에 대한 우월감(차별)은 마약보다 무섭다. 비극의 주문, ‘난 너와 달라’는 폭력을 부른다. 끔찍한 상처를 주고도 잘못을 알지 못한다.  옛날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내’가 너무 높은 세상, ‘너’는 한없이 낮아지고, ‘공존’은 멀기만 하다. ‘네가 감히?’ 아닌, ‘내가 뭐라고!’ 하는 마음으로 살면, 세상의 아픔이 줄어들 텐데. 우리 그렇게 다르지 않은데.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오늘, 양쪽이 거리를 좁히면 좋겠다. 하지만 차이는 커지고,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든다. 우리, 감당할 수 있을까?!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금강경강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벼락은 나의 존재를 둘러싼 대상세계에 대한 집착의 고리에 내리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금강의 벽력은 곧 나의 존재 그 자체에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80쪽)     


명배우가 멋지게 나이 드는 모습도, 신나는 음악과 함께하는 드라이브 장면도 좋다. 후반부로 갈수록 차오르는 긴장감은 이것 참,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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