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있다. 집 앞 고추밭에 말뚝을 박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러다 <복면가왕> 못 보면 어쩌지?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부모님이 일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여덟 살 큰딸이 나왔다. “아빠, <복면가왕> 봐야지. 벌써 여섯 시야! 빨리 들어와!” 망치질은 빨라졌고, 조금 늦게 시청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이미 음악의 세계에 풍덩!
오늘(24)은 다른 날과 다르다. 주윤발이 7연승에 도전하고, 그 앞에는 방패라는 무시무시한 도전자가 길을 막고 섰다. 지난주에 그가 보여준 실력은 우리 가족을 모두 긴장케 했다. ‘이러다 주윤발이 떨어지면 어쩌지?’ 2, 3라운드에서 보여준 방패의 실력은 놀랍도록 탄탄했다. 그의 노래가 하늘을 날수록 우리의 마음은 불안해졌다. 아, 오늘은 주윤발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주윤발이 ‘Lonely Night’(원곡 부활)을 부를 때 우리는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기도를 했다. 강적과 부담감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모습에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내 나이 마흔둘, 애들 앞에서 TV 보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지. 결과는 한 표 차이, 승자의 화면에 주윤발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소리 지르며 소파에서 떨어졌고, 여섯 살 둘째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린놈이 울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큰딸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주윤발이, 주윤발이….”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좀 진정이 됐나 싶어 주윤발의 노래를 틀자 다시 눈물 폭발! 아, 우리 딸이 주윤발을 정말 많이 좋아했구나. 겨우 웃음을 참고 있는데, 아이의 절규가 들렸다. “나 <복면가왕> 안 볼 거야! 미워, 방패도 밉고, 안 찍은 사람 다 미워!”
방에 들어가 소리 없는 박장대소를 하고, 슬픈 마음을 풀어주려고 아이 옆에 앉았다. ‘비록 졌지만 주윤발은 우리의 영원한 가왕이고, 강승윤 솔로 앨범 나오면 사서 듣자.’ 다른 가수를 응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복면가왕> 시청을 허락받았다. 가왕 주윤발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 큰 힘과 즐거움을 줬다. 승윤 씨, 고마워요. 앞으로도 응원할게요!
세상에 주윤발이 떨어지는 것보다 속상한 일이 더 많을 거야. 울어, 울어도 돼. 그때도 오늘처럼 아빠가 옆에서 위로해줄게. 두려움 없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흰수염고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