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면 되잖아

내가 하면 되잖아

by 안효원

“이놈의 새끼, 되게 시끄럽네.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앗, 할머니…. 벌초를 하는데 마음이 어지러웠다. 더운 날씨 때문이 아니다. 기피제를 피해 눈을 파고드는 모기 때문이 아니다. 매년 아버지와 나 둘이서 해서도 아니다. 멀지도 않은 산소 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돼지 농장이 산 주변 땅을 다 사서, 오래전부터 있던 길을 없앴다. 밭에 똥을 뿌리고, 관리를 안 해 풀이 사람 키보다 높이 솟았다. 아, 혈압 상승!


20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장례식이 떠올랐다. 장관이었다. 개울을 건너는데 꽃상여를 따르는 행렬이 백 미터도 넘었다. 이웃이었던 나이 지긋한 교회 집사님은 장로님 아버지 장례라고, 아침 일찍 옥수수밭에 길을 내주었다. 울면서 따라가면서도, 바람 소리 가득한 밭을 지날 때는 신비로운 마음이 들었다.(아버지는 그 집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많이 울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도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가는 길이 좋았을 때는, 그래 봐야 흙길이지만, 자주 갔다. 가서 그냥, 왔어요, 그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농장이 문을 걸어 잠그고, 똥을 퍼붓고, 풀이 무성해지면서 이제는 1년에 한 번만 간다. 이 모든 상황이 화가 났다. 어떻게 사람들이 저럴까 싶다가도, 하긴 뭐, 타지 사람, 자기 땅 자기 맘대로 한다는데, 후, 길이 끊겼다.


“길을 내면 되잖아.”


그때, 나에게 한없이 인자한, (열여섯에 시집온 할머니에겐 평생 잘한 거 별거 없는) 할아버지가 말했다. “산소 뒤에 산이 있잖아. 그 뒤쪽으로 올 수 있어. 꼭 오라는 건 아니지만, 와야 한다면 말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머지않은 곳에 산 능성이 보였다. 잣나무 숲이라 풀도 자라지 않았다. 나무를 좀 정리하면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순간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내가 하면 되잖아.’


12월 초 김장이 끝나면 낫이랑 톱 들고 와서 길을 낼 거다. 뱀과 멧돼지가 좀 걸리긴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정도는 막아주시겠지. 이제는 벌초 가는 길 때문에 화날 일도, 불평할 일도 없을 거다. 왜 그동안 길을 낼 생각을, 내가 할 생각을 못 했을까. 내 인생인데…. 돼지 똥물을 밟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아까 걸어온 흔적을 다시 밟으며, 한 마디 했다.


“열 번만 다니면 길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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